토정선생님이 책을 덮으며 말씀하십니다.

“이 책 삼국유사 말고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가 있지. 삼국사기는 신라에 편중되어 있어. 지은 김부식의 선조가 그쪽 지역 사람이기도 한 탓이지. 신라의 시조가 누구인지 아나?”

갑자기 묻자 나는 기억을 더듬어 한참 만에 대답했습니다.

“김안지 아닙니까? 알지던가?”

헷갈립니다. 하긴 제가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책을 정해 읽은 것도 아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잠깐 본 것 밖에 없으니 알 수가 없지요. 토정선생이 빙긋이 웃습니다.

“야담을 많이 아는 자네도 이러니 다른 이는 오죽하겠나. 신라의 시조는 첫 번째가 박혁거세로 고구려 동명왕보다 이십년 앞서 나라를 세웠지. 처음에는 여섯 개의 부족이 촌장이 지도 아래 살았는데 박혁거세가 철기를 가지고 나타나 이들을 복속시키고 임금이 되었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박혁거세 탄생은 우물 옆에 놓인 광채가 나는 알을 깨보니 그곳에서 사내아이가 나타났다고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이 되고 그의 부인 알영도 알에서 태어난 여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했더니 선생이 픽하고 웃습니다.

“그게 다 정치하는 수법이야. 태어날 때부터 신비한 사람이라고 해야 어리석은 백성들이 무조건 따를 거 아니야? 몇 대 내려와서는 석탈해가 임금이 되지.”

석탈해는 해변가에 사는 할멈이 상자에 들어있는 아이를 건져 키웠는데 꾀가 많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이름난 신하의 집의 집터가 훌륭함을 알고 이것을 빼앗기 위해 몰래 숫돌과 숯을 파묻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원래 대장장이인 자신의 집이라고 우기자 관청에서는 땅을 팠는데 거기서 숫돌과 숯이 나오자 승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혜가 뛰어난 석탈해는 박씨 집안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유리왕이 죽은 후에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습니다.

“석탈해는 왕실 박씨의 사위이기에 임금이 되었던 것이야. 그 뒤에 김알지가 신라의 임금이 되었는데 역시 계림전설이 있지.”

숲에서 닭은 소리를 들은 왕이 확인해 보니 금궤가 나무에 걸려 있고 그 아래 흰닭이 있어 궤를 열어보니 용모 단정한 아이가 있어 김알지라 이름을 붙이고 키웠다고 합니다. 왕이 태자로 삼으려 했으나 사양하고 그 후로 13대 후손이 신라의 왕이 되어 통일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김씨 왕조는 그 조상이 흉노족이라는데 그것이 맞습니까?”

나는 언젠가 꿈속 텔레비전에서 본 역사 프로그램을 기억해 냈습니다.

“훗날 역사가들은 김알지를 흉노의 왕자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나도 알 수 없어. 흉노가 아닐 가능성은 고구려가 중간에 가로막고 있는데 어떻게 흉노의 왕자가 신라까지 올 수 있겠나?”

토정 선생님도 모르는 것이 있나 봅니다. 어쨌든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 건국한 왕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분일 겁니다. 궁금합니다. 우리가 왜 오래 전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하나요. 원통은 불경 대신 상고사 책을 열심히 읽고 속세로 들어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꾸며 전파할까요. 그 대답은 토정 선생이 해주셨습니다.

“우리 조선에서 단군을 국조로 하자는 이는 눌재 양성지 선생뿐이야. 우리가 태종 이래 명나라에 사대하는 것은 명망 있는 집안의 주인이 옛날 하인이었던 자가 밖에 나가 부자가 되자 허리를 굽혀 받드는 것과 같은 거야. 양성지 영감은 그것을 꿰뚫고 있는 거지.”

토정선생은 아주 옛날에는 우리가 지금 명나라의 한족보다 훨씬 우월했다고 했습니다. 한족은 맞서 싸울 능력이 없으므로 바짝 엎드려 복종하고 기회를 엿보았다고 합니다. 인구수가 많고 이익을 챙기는 능력이 뛰어난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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