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

 

정영효

 

내가 받은 첫 번째 친절은

열두 마리 짐승 중 한 놈과 생일을 엮어 만든 계획

작명은 태내의 이후를 찾아 출생에 보태는 것이지만

간혹 내 이름을 불러보면

먼 소식이 풀리지 않는 사주를 차려 놓는다

그렇게 하고, 해야 한다는 식의 믿음

또는 다짐이 나와 다르게 흐르고

문틈에 낀 밤의 외막 같은

몰래 다가오던 적요가 출입을 들킨다

이름이 가진 줄거리는 계속되는 이설

그걸 채우고 죽은 사람은 자신의 명(命)을 탐독했을까

남의 이름을 외울 때 뇌압에 귀가 멍하곤 하다

글자에 묻은 음색의 취향과 얼굴을 함께 떠올리자

인연을 데려온 이력이 궁금하고

낯선 공명이 관계를 꺼낸 채 탁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알아야 해서 곧 숨겨버리는 망각

이름이 처음 만나 베푸는 예의라면

기억하기 힘든 이들은 전래가 어긋난 속계(俗界)를 지닌 걸까

정해진 문답으로 인사하는 순간마다

내 육성을 의구하므로

이름은 나를 훔치기 위한 혐의인지

자주, 잊힌 이름들의 주기가 돌아온다

 

[프로필]

정영효 : 경남 남해, 200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감상]

이름, 내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것이 이름이다. 이름은 나를 대표하거나 타인을 내가 기억하는 수단이며 내가 타인을 기억하는 수단이다. 이름은 내 뜻과 의지로 주어지지 않는다. 중간에 개명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이름은 내게도 없고 타인에게도 없다. 잊거나 잊히거나 할 때 가장 먼저 삭제되는 것도 이름이다.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이름이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은 있어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구겨 버리거나 삭제하지 말자. 그리울 때 몰래 소리 내어 이름을 부르면 어쩌면 이름의 주인이 달려올 수도 있다. 이름은 나를 훔치기 위한 혐의라는 본문의 말이 머릴 맴돈다. 내 이름은 어쩌면 네 것인지도 모른다.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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