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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황희 정승 <141>

토정 선생이 몸을 바로 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은 습관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습관을 바로 고치면 되는 것을 눌재 그분은 놔둔 것이지요. 하지만 말을 더듬기에 본 이익이 더 많았습니다.”

토정 선생은 양성지 대감이 머리가 뛰어난 분으로 말을 더듬지 않으면 벌써 정승을 지냈을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말을 더듬기에 두 번의 피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즉 한명회 일당이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죽일 때와 성삼문 등의 사육신의 난 때 빠진 이유라고 했습니다. 둘 다 양성지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양성지가 소속된 집현전과 관련지었기 때문입니다. 김종서는 말은 어눌하지만 좋은 제안을 많이 하는 양성지의 재능을 높이 쳐주었습니다. 또 반역을 모의한 집현전의 사육신들도 양성지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더듬거리는 말투로 해서 제외되었습니다. 사육신이 포섭하려던 것이 나중에 들통나서 양성지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토정 선생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지성안이 고개를 번쩍 들으며 말했습니다.

“선생께서는 어찌 소상하게 알고 계십니까? 마치 본 것처럼 말하시네요. 정말 미래에서 오신 분이 맞습니까?”

그럴 만도 하지요. 2019년 현대에서는 수많은 연구서적에 나와 있지만,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세조 시대에서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알았으니까요. 토정 선생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죽은 분으로 저승에 기록된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미래에서 왔소. 지금 눌재께서는 규장각과 비서각 설치를 준비하고 계시지 않소? 내년에는 동국지도라는 훌륭한 지도를 만들게 될 것이오.”

토정 선생의 말에 지성안의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즉시 우리에 대한 의혹이 풀어졌고 좌중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지성안이 술상을 들이고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고 합니다.

“세종 임금 때에 명신 황희 정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황희 아시지요?”

내가 살던 선조 시대에도 황희에 관해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척했습니다. 그래야 지성안이 말을 할 테니까요. 토정 선생도 귀담아듣는 척합니다.

“황희는 젊어서 성질이 까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비를 자주 따졌는데 어느 날부터 겸손하고 배려심이 많아져 주위 사람이 까닭을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농부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젊은 황희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잠시 쉬어가려고 나무 그늘에 앉았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농부가 두 마리의 황소를 교대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는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농부가 일을 마치고 옷을 털 때 가서 물었습니다. 어느 소가 밭을 잘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가 그의 손을 잡아끌고 나무 뒤로 가더니 누런 소가 까만 소보다 조금 낫다고 속삭였습니다. 황희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왜 속삭이듯이 말하느냐고 하니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저 소가 내 말을 알아듣는다면 둘 중의 하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겠소?”

그제야 황희는 농부의 깊은 뜻을 알아채고 다음부터는 입과 행동을 조심했다고 합니다.

황희가 공무에 잠깐 짬을 내어 집에 왔는데 여종 둘이 서로 시끄럽게 다투었는데 한 여종이 와서 “아무개가 저와 다투다가 이러이러했으니 아주 간악한 년입니다”라고 일러바쳤습니다. 그러자 황희는 “네 말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여종이 와서 꼭 같은 말을 하니 황희는 또 “네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 마침 황희의 조카가 옆에 있다가 답답해서 “숙부님 판단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먼저 여종은 이러하고 다른 여종은 저러하니 먼저 여종이 옳고 나중 것은 그릅니다.” 하며 나서자 황희는 다시 또 “네 말도 옳다”고 하며 독서를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줏대가 없어 보이나 소신과 원칙이 분명한 분으로 관용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나도 토정 선생도 다 알고 있는 황희의 일화이지만 지성안의 해석이 그럴듯했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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