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의 초상

 

지정애

 

화려한 정오 같은 건 없어

발목 잘린 구름

방황과 방탕 사이의 곡예

진창과 초원의 분열된 지도

지하도 입구 깡통의 침묵

날개가 퇴화해 가는 것도 몰랐다

 

꽃과 나무의 남쪽은 남의 옷

밤과 동굴의 북쪽은 꿈속 엄마보다 아늑했다

방바닥에 엎드린 등에서 기차가 자라났다

 

잿빛 하늘에 은빛 지느러미 보이는 날엔 무작정 걸었다

생에 낀 마를 걷어내는 의식을 행하듯

비 오는 날 비둘기가 처마 밑에서

바알간 맨발로 글썽거리는 것처럼

 

생이라는 허공에 간신히 달라붙었던 자벌레의 시간

연두와 분홍은 천 리 밖 사건이었고

화살표 없는 자유는 나날이 부르텄다

 

오늘도 문장은 난수표를 더듬는다

 

[프로필]

지정애 : 계간 서정시학 2009 등단, 상서여자정보고등학교 교사

[시 감상]

때론 삶에 지칠 때가 있다. 여하의 이유이든 지칠 때는 그냥 지쳐있는 것이 지쳐있는 나를 이겨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한 없이 지쳐있다 보면 인제 그만 일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비가 오는 날은 빗속으로, 해가 푸른 날은 볕 속으로, 상상을 달리던 기차에서 내려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는 것을 퍼뜩 느낄 때 주저 없이 일어나자. 여기가 生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