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지부상소 持斧上疏

손 경 호

 

오래전, 공직에 있을 때다. 차관이 국장을 부르더니 장관의 경고를 전했다. ‘회의 때 장관 뜻에 반反하는 의견을 말하지 말라.’였다. 귀를 의심하고 넋을 잃은 국장은 장관과 다른 의견을 말했던 두어 번의 일을 더듬어낼 수 있었다. 대면의 일자(一) 충고와 삼자를 건너는 갈지자(之) 힐난詰難은 모양새만 봐도 네 배의 강도强度로 세게 꽂힌다. “중지衆智를 모으자는 회의 아니던가요?” 목에 걸린 가시를 내뱉듯, 국장의 대꾸는 받은 힐난의 충격보다 더 불손했다. 처신을 살피게 해 주려다 머쓱해진 상관의 면전에 뱉어낸 부하의 다음 한 마디에는 더욱 가시가 돋아있었다. “목에 칼이 와도 해야 할 말은 해야지요!” 피의 왕 연산은 신하들에게 신언패愼言牌를 채워 입을 봉쇄하고, 유일하게 진언進言했던 내관 김처선金處善의 팔다리와 혀를 잘라 죽였다.

왕정 시대의 왕권은 무소불능이다. 생사여탈이 군왕의 말 한마디에 달렸으니 왕명 불복은 위험천만이다. 하지만, 왕명 거부가 많을수록 그 임금은 현군賢君이었고, 없을수록 무능한 폭군暴君이었다는 역사 읽기가 있다. 조선 세종 때의 어전 회의에서는 신하들의 통촉洞燭하여 달라는 진언이 가장 많았다 한다. 신하가 임금에게 왕명을 재고해 달라는 진언은 군신 간의 소통이다. 신하는 선비로서 관직에 올랐으니 올곧은 선비 일수록 올바른 진언을 했을 터다. 왕에게 하는 진언의 자리에 도끼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신하의 말을 믿지 못하면 도끼로 목을 치라는 선비의 결기였다. 신하가 임금에게 목숨을 걸고 했던,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다.

고려의 충선왕은 아버지 충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부왕父王의 후궁을 범犯하고 말았다. 왕실의 윤리 도덕이 아비의 여인을 탐하기까지 막장으로 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절대자를 말릴 엄두는 내지 못 했다.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군왕의 패륜悖倫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게 되자, 감찰규정監察糾正의 벼슬에 있던 선비 우탁禹倬이 지부상소에 나섰다. 흰 두루마기에 거적을 짊어지고 어전에 들어선 선비의 한 쪽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가 들려 있었다. 임금의 불의不義와 벌일 신하의 결투 신청이다. 선왕의 후궁을 숙비로 봉해 더욱 가까이 하려던 충선은 신하의 도끼에 눌려 더 이상의 패륜을 접었다. 그런 임금과 더불어 부질없는 벼슬에 연연하느니, 차라리 야인으로 돌아가 후학 양성에 정진했던 우 선비의 기개가 천둥같이 울려온다.

조선의 선조왕은 내우외환內憂外患을 못 다스린 임금에 든다. 임진년 왜란의 치욕도 충직한 신하들의 직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데 있다. 동국십팔현東國十八賢의 대 선비이자 문신 조헌趙憲도 조정의 난맥을 규탄하는 직언을 여러 번 하였으나 파직과 유배의 응징으로만 대했다. 구차한 관복을 벗어 던지고 초야에 묻혀 학문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을 때, 노략질 할 길을 내놓으라는 도요토미의 사신을 맞고도 임금은 우왕좌왕했다. 대궐 앞에 나아가 사신의 목을 베라며 사흘 동안 간諫했던 조 선비의 지부상소에 귀 기울였더라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왜란이 터지자, 조 선비의 그 도끼날 기개는 구국의 대의大義에 점화되어 의병장義兵長으로 싸우다가 금산의 칠백의총七百義塚에서 만 대를 지켜보게 되었다.

흥선 대원군의 철옹성 섭정 권력을 몰아내 왕권을 회복하고 친일 조정을 규탄했던 선비 최익현崔益鉉의 지부상소도 있다. 들고 간 도끼가 신하의 목이 아니라 방자한 권력의 끈을 끊었지만, 기우는 국운을 세우는 데는 때늦었던가 보다. 사헌부 장령掌令관직을 벗어던졌던 최 선비의 기개도 늑약勒約에 짓밟힌 국권 회복의 독립의병장 용맹으로 이어졌다. 74세 노선비의 꺾일 줄 모르는 기개는 청사靑史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선대의 선비정신 아니었던가. 명장名將은 덕德으로 명졸名卒을 거느리고, 그 덕은 대의에서 나온다. 대의는 아무리 짓밟아도 꺾이지 않는 정의正義를 혼으로 한다.

역사는 과거를 뿌리로 하여 현재에 있고, 현재를 본령本領으로 미래에 영속한다. 크로체B.Croce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말한 의미이다. 왕조 시대의 선비정신은 오늘의 공화국 공직자의 영혼이자 뿌리이다. 천둥 같은 도끼날의 기개는 역사와 함께 이어져 왔을 터인데, 미래로 이어져야 할 지금의 도끼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한때의 양지에 「노 키즈존 No Kids-Zone」의 금줄을 치고 그 안의 세상이 전부라고 우겨대지만, 사람들은 지평선 너머에도 광막한 천지天地가 있다는 것을 안다. 진언불허進言不許의 소통 봉쇄는 폭군暴君의 독단獨斷을 낳을 뿐인데, 옛 선비들의 영정 앞에 나가 도끼 한 자루 주십사 기도해 봐야겠다. 계수나무 베려는 금도끼가 아니라, 독단의 금줄 끊을 무쇠도끼면 충분할 것이다.

 

 

 

<수상 소감>

당선이라는 뜻밖의 선물에 당황할 뿐입니다. 글을 쓰기는 하지만 좋은 글로 칭찬 받을 작품을 쓴다는 것은 먼 하늘의 별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중봉 조헌 선생님의 충혼을 기리는 문학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봉직했던 이로서 선조 대가들의 지혜와 용맹을 늘 흠모하기는 했지만 받들어 실천하는 일에는 너무 개을렀습니다. 더욱이 문무를 두루 통달하신 중봉 선생님이 남기신 유훈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순탄한 관직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학문을 세우고 후학을 기르며, 불의에 맞선 치국의 충혼은 영원불멸일 것입니다.

그저 필부의 생각을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은 졸작의 수필, 『지부상소(指斧上疏)』에 후한 평가를 해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영예의 당선에 보답하는 일로 중봉 선생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해야겠다는 각오를 굳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