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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하성출신 국학자 ‘권덕규’ 지은 글 ‘조강물참’ 발견

숙명여대 최시한 교수, 해제 논문 서강인문논총 54집에 발표

한강하구 역사문화콘텐츠개발 핵심 자료 되나

최시한 숙명여대 교수

김포의 주요 역사자원인 ‘조강물참’에 대한 1935년 수필이 발견, 이를 현대어로 재해석한 해제 논문이 발표돼 한강하구 역사문화콘텐츠개발의 진일보가 전망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최시한 숙명역사관장은 30일 발표한 서강인문논총 54집의 「권덕규 지음 「조강 물참」에 대하여」를 통해, “1890년에 하성면 석탄리에서 출생한 권덕규 국학자는 《매일신보》에 고정란 산문을 십여편 실었는데 이 가운데 권덕규 학자의 고향인 김포와 연관된 「손돌이 추위」와 「조강 물참」이 들어있다”고 밝혔다.

최 관장의 논문은 주시경의 제자로 한글운동에 헌신하고 『조선유기』를 비롯한 역사서를 저술한 권덕규 학자가 『조강물참』이라는 200자 원고지 20장 남짓의 수필을 통해 조강물참의 인문과학적 가치와 자연과학적 가치에 대해 조망하고 있으며, 이 학자의 ‘수필’을 주목할 이유는 수필이지만 대상 자료를 사실적 이야기로 대하면서 그 내용을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다루며 관련 지식을 추가하고 있다는 점이라 전하고 있다.

논문에 의하면, 조강 연안에는 그곳의 물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왔고 이를 이규보(1168-1241)가 정리해 시로 지어 뱃사람들이 외우기 쉽게 하였으나, 조강 물참 텍스트는 토정 이지함이 쉽게 풀어 뱃사람들이 노래로 부르게 했다고 한다.

이 논문은 김포 출신 학자 ‘권덕규’의 작품을 현대어로 해석함으로서 김포의 중요전통역사문화인 ‘조강 물참’의 실질적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는데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최 관장은 “논문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 권덕규의 ‘조강물참’은 김포 출신의 국학자가 80여년 전,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었다는 자료를 고증하고 풀이할 뿐 아니라 물때에 관한 일종의 ‘민속적 지식’을 추가한 글”이라며, “한글을 사용한 근대 문장으로 되어 있는 권덕규의 글을 통해 한국 어학, 문학, 민속학, 역사학, 해양학 분야 연구에 보탬을 기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김포 지역문화 콘텐츠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 물참'의 발견에 대해 최해왕 김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최시한 교수가 소개한 권덕규의 글을 통해 과거 뱃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조강물참에 대한 내용과 사회적 배경, 조강물참으로 인해 더욱 유명세를 타고 번성하였던 통진 조강포구의 모습 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라며,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조강(한강하구) 관련 연구성과들이 발굴, 공유되기를 기대하며, 김포문화재단은 이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더욱 힘쓸 것”이라고 전했다.

본지에서는 최시한 숙명여자대학교 숙명역사관장의 동의를 구해, 서강대인문과학연구소가 발행한 《서강인문논총》54집, 「권덕규 지음 「조강 물참」에 대하여」를 부분 인용하여 게재하고자 한다.

다음은 국학자 권덕규의 글 「조강 물참」을 최시한 숙명여자대학교 교수가 현대어로 바꾼 것이다. 최시한 교수의 동의를 구해 일부를 생략하고 전재한다. 자세한 주석은 본래의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조강 물참

 

‘물참’이란 한문으로 쓰면 수참(水站)이다. 이 수참이란 말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나룻배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관청으로, 나라에서 운영하는 나루의 역참(驛站)이다. 다른 하나는 아침 밀물이나 저녁 밀물이 한껏 밀었을 적 곧 바닷물이 가장 많이 찬 때를 이름이다. 그런데 ‘조강 물참’이라 하여 바닷물의 물때를 말하려면 반드시 조강을 표준 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다른 것이 아니다. 조강 여기에서 조선의 조석의 기준이 되는 시각을 측정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을 측정한 연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다만 거기서 측정한 결과를 오언(五言)으로 표현한 「조석시(潮汐詩)」는 고려 시대 이규보가 지은 것이요 그 측정 장소가 조강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측정 연대가 고려 시대, 특히 이규보의 생존 시대(고려 제19대 명종~23대 고종)라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경험으로 알아오던 조석 시간을 이규보가 시로 표현하였을 뿐인 것이다.

이규보는 조강과 인연이 많은 사람이니 이에 대하여 우선 설명하려 한다. 조강은 한강의 하류로 그 위치가 한강이 임진강과 합하는 데와 한강이 강화도에 이르러 남북으로 갈라지는 곳에 있는 연미정(燕尾亭)사이에 있다. 그리고 강은 물론 양 옆이 있는데, 조강의 남쪽 옆은 통진이요 북쪽 옆은 풍덕이다. 지금 통진은 김포가 되었고 풍덕은 개풍이 되었다. 이것은 잔사설이고, ‘조강’을 조강 포구 명칭으로 줄여 쓸 때 거기에는 통진 조강과 풍덕 조강이 있는데 나루 마을로는 풍덕 조강보다 토인 조강이 낫고, 이른바 반촌(班村 양반 마을)으로는 통진 조강보다 풍덕 조강(곧 ‘조강 안말’)이 나았다. 이것도 또한 잔사설이요, 이규보가 조강과 관련된 두 가지 널리 알려진 것을 남겼으니 하나는 풍덕 조강 동네에서 유명한 「조강부(祖江賦)」요 다른 하나는 통진 조강 동네에서 유명한 「조석시」이다.

(중략)

통진 조강에서의 「조석(에 관한)시」는, 그가 그때 서울(곧 송도)을 가려면 부평에서 통진(김포)을 거쳐 조강을 건너게 되는데, 그곳에서 매일 조수가 들고 나는 시간을 노래로 지은 것이다. 그 「조강조석시」는 이러하다.

 

삼토삼용수(三兎三龍水) (토끼는 묘시(卯時), 용은 진시(辰時)

삼사일마시(三蛇一馬時) (뱀은 사시(巳時), 말은 오시(午時)

양삼원역이(羊三猿亦二) (양은 미시(未時), 원은 신시(申時))

월흑부여사(月黑復如斯)

 

이를 다시 설명하면, 조강에서 (하루 중) 밀물이 가장 많이 들어차는 때 즉 물참 때 (중에서도 첫 번째 물참 때)는 음력으로 다음과 같다.

 

초하루는 묘시 초, 초이틀은 묘시 중, 초사흘은 묘시말,

초나흘은 진시 초, 초닷새는 진시 중, 초엿새는 진시말,

 

초이레는 사시 초, 초여드레는 사시 중, 초아흐레는 사시 말,

초열흘은 오시 중

 

열하루는 미시 초, 열이틀은 미시 중, 열사흘은 미시 말,

열나흘은 신시 상반(上半),

보름은 신시 하반(下半),

 

달이 이지러지면 다시 이와 같네.

 

[초하루부터 초사흘까지 사흘 동안의 매일 첫 번째 물참이 묘시(오전 5시~7시)이면 매일 두 번째 물참은 유시(오후 5시~7시)이다.] 달이 이지러지기 시작한 열엿새부터 열여드레까지 사흘간의 첫 번째 물참은 유시이고 두 번째 물참은 묘시인데, 이는 밤낮(혹은 오전, 오후)의 순서가 바뀌었을 뿐 초하루~ 초사흘과 같은 양상이다. 이것이 이른바 ‘주야’의 시의 상충(맞질림‘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으로 미루어 앞보름 이후의 나머지 보름은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이 이규보의 「조석시」는 앞의 보름과 뒤의 보름을 나누어 지은 시로서, 보름 후도 보름 전을 가지고 미루어 따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조강 근처에서의 말이요, 호서는 경기보다 이르고, 호남은 호서보다도 더 이르며, 영암 이동은 썩 다르고, 김해부터는 있는 듯 마는 듯하다가 울산 이북은 사뭇 없는 셈이다. 이것이 이른바 ‘동해무조수(동해에는 간만의 차가 없음)’라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야기할 것이있다. 조수가 강포로 들어오는 것을 물이 ‘민다’ 하고, 잔뜩 밀었을 적을 참이라 하고, 물이 물러가는 것을 ‘썬다’고 하는데, 이 물이 물러가는 것 곧 써는 것을 ‘감’이라 한다. 또 뱃사람의말에 ‘내참외감’이란 말이있으니, 조수가 강의 안에서 ‘참’일 적에 바깥 편 바다는 ‘감’이 된다는 말이다.

또 이 조수를 기준으로 앞의 보름 뒤의 보름을 갈라가지고 크게는 ‘보름사리’, ‘그믐사리’, ‘초여드레 조금’, ‘스무사흘 조금’ 등과 같이, 앞뒤 보름 동안의 각 날짜에 대한 명칭이 있다. 가령 사리날(15일이나 그믐날)이라 하면, 그 보름 안에서 조수가 제일 많이 미는 날이요, 조금날(초8일이나 23일)이라 하면 그 보름 안에서 조수가 제일 작게 미는 날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초여드레 조금으로부터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른 날짜의 명칭을 따져보기로 하자. 초여드레 곧 8일이 조금, 그 다음 날 9일이 ‘무쉬’니, 무쉬 날은 물이 더 줄도 늘도 아니하는 날이다. 생각하건대 무쉬는 아마 물이 쉰다는 말인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물이 늘기 시작하는데, 이 물이 늘어가는 것을 한국어로 ‘메’라고 한다. 곧 열흘날 10일이 한 메, 11일이 두 메, 13일이 네 메, 14일이 다섯 메, 15일이 여섯 메 곧 사리이니, 먼저 말했듯이 앞의 보름 동안 중에 물이 제일 많이 미는 날이다. 이 물의 미는 분량이 그저 그만한 채로 몇 날 가는데, 16일이 일곱 메, 17일이 여덟 메, 18일이 아홉 메, 19일이 열 메이다.

이후부터는 물이 줄어드는데, 이 주는 것을 ‘걱기’라 한다. 곧 스무날 20일이 ‘걱기’, 21일이 ‘두 걱기’, 22일이 ‘다걱기’이다. 걱기란 말은 물이 줄어 간다 즉 ‘걱긴다’는 말이요, 다걱기는 다 걱기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물이 흠뻑 준 조금이니, 이는 23일 조금 곧 ‘두 조금’이다.

먼저 말했듯이 그 다음 날이 무쉬니 24일이 무쉬이고, 이날 다음부터가 물이 느는 때 즉 ‘메’이다. 25일이 한 메, 26일이 두 메…… 29일이 다섯 메, 30일 그믐날이 여섯 메, 그 다음 달 초하루가 일곱 메이다. 먼저 계산대로 하여 초4일이 열 메, 다음날 초5일이 한 걱기, 6일이 두 걱기, 7일이 다걱기, 8일 곧 초여드레가 조금이다.

이렇게 앞뒤사리, 앞뒤 조금을 기준으로 보름씩 같은 날짜 명칭이 있어서, 배를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물참을 따지게 되는데, 이 물참의 기준을 세운 장소가 조강인 것이다. 그러므로 ‘조강 물참’을 일컫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고, 통진 조강포가 국내의 포구마을 가운데 유명한 것이다.

이미 여러 번 말하였듯이, 조강을 기준으로 한 물참이므로 같은 한강 연안이라도 조강과의 거리에 따라 물의 참감이 다른 것은 물론이요, 호서는 경기보다 이르고, 호남이 호서보다 더 이르며, 영남과 동해가 더 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이것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괜히 이규보의 조강조석시 - ‘삼토삼용수’만 외우고 있다가는, 조강이 아닌 다른 강안(江岸)에 가서 물참을 놓치고 낭패할 것이다.

끝으로 고려 말에 포은 정몽주가 수참 곧 관에서 운영하는 나루에 관한 제도를 애써 마련한 일을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게 된다. 아울러 최근 간행된 『강화지』에 이 조강 물참을 ‘교강 물참’이라고 하면서, 이규보의 「조석시」가 강화도의 교동도 부근을 기준 삼은 것처럼 끌어다 적은 것은, 자기 고장을 너무 내세우는 편견이 심한 처사로서 역사까지 가려 덮는 행동이라고 본다.

 

최시한, 「권덕규 지음 「조강 물참」에 대하여」, 《서강인문논총》54집, 서강대인문과학연구소

 

김주현 기자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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