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

 

신정민

 

그의 턱 밑에 3센티미터 흉터가 있다

행운목 화분 모서리가 만들어준 그것은 항상 닫혀있다

 

넘어진 적 있다, 는 상징에서

그는 모든 것을 꺼낸다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서류뭉치

주말에 다녀오기로 한 아이와의 동물원 약속

기린과 코끼리도 그곳에서 나온다

미처 다 꺼내지 못한 아내의 생일선물도

어지러운 책상의 물건들도

 

어느 날 갑자기 깨끗해진 그의 방은

그가 지저분한 모든 것들을 그곳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옆자리 동료가 자신을 헐뜯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에도

그가 꾹, 참을 수 있었던 것

불같은 마음을 집어넣고 스윽,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밑 짧은 바지였다가

짤랑거리는 동전 지갑이었다가

모처럼 장만한 가죽 쟈켓이 되기도 하는 그를 통해

흉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흉 없는 사람은 좀 수상했다

 

[프로필]

신정민: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꽃들이 딸꾹][뱀이 된 피아노]외

[시 감상]

세상의 모든 분노를 어디 한 곳에 넣고, 스윽 닫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지저분한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넣고 스윽 닫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함석헌 시인의 시 제목처럼 ‘그대 골방을 가졌는가’에 ‘그렇소!’ 답할 수 있다면, 어쩌면 바로 그곳, 이쪽과 저쪽을 스윽 닫을 수 있거나 닫히거나, 그곳이 어딜까? 그 답을 찾는 4월이 되길 간절하게 소망하며...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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