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랫동안의 비밀을 염포교의 매 같은 눈에 걸리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도망칠 곳은 양동이가 말한 대로 과거밖에 없습니다. 둘은 급히 백마도로 향했습니다. 누가 볼까 골목길로 해서 살금살금 갔지만, 김포에서 혹부리 영감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가는 곳마다 아는 척하는 바람에 웃음으로 얼버무렸습니다. 이렇게 해가 지고 어둑한 시간에 백마도에 도착해서 토정 선생에게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생은 침울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괘를 보니 네가 올 줄 알았다. 목숨이 위태롭구나. 그리고 옆에 있는 자네도 오늘 죽을 고비 넘겼지? 두 사람 시체가 눈에 보이는구먼.”

양동이는 돌미륵이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내가 설명해 주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가 점을 쳐보니 먼 길을 떠나 훌륭한 사람을 도와야 할 일이라는군. 둘 중에 한 사람이 길잡이가 되겠군.”

그러자 양동이가 선조인 양성지 선생이 계신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토정 선생은 이제 곧 임진왜란이 나니 과거로 돌아가 목숨을 보전하자고 했습니다. 나는 이미 돌아가신 선생이 다시 살아 뭐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따르기로 했습니다. 우선 선생이 시킨 대로 한강 물가로 가서 뻘을 잔뜩 가져와 몸에 발랐습니다. 돌미륵으로 위장한 거죠. 아침이 되자 가문돌을 시켜 근처의 민가에서 소에 매달아 운반하는 수레를 구해왔습니다.

“가문돌, 우리 셋을 저 위에 올려놓아라. 그리고 이리저리 말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백마도를 탈출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저와 양동이는 뻘을 잔뜩 묻혀서 미륵으로 위장해 가마니를 덮었습니다. 토정 선생의 미륵은 사람 눈에 띄게 그 옆에 놓았지요.

덜커덩 덜커덩. 몸이 우람한 가문돌이 소가 끄는 수레를 끌고 북으로 향했습니다. 새벽부터 거인이 이상한 차림으로 가는 수레를 행인이 보았지만, 돌미륵을 운반하는 것으로 무심코 넘겼습니다. 돌미륵으로 변장한 나와 양동이는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얼마나 긴장했으면 돌미륵으로 변장한 것을 깜빡 잊고 손을 잡을 정도였으니까요. 얼마를 갔을까요. 김포 반도 동쪽 끝의 백마도에서 새벽에 떠난 수레는 정오를 넘기고서 대포리에 도착했습니다.

“풍문아. 어서 나를 안고 저 위의 양성지 선생 묘로 가자꾸나. 가문돌은 임무를 다했으니 빨리 저 앞으로 뛰어가 논두렁 밑에 엎드려 숨어 있어라.”

토정 선생의 말에 가문돌이 급히 뛰어 사라졌습니다. 가마니를 젖히고 일어난 나는 양동이와 함께 돌미륵을 반짝 들었습니다. 그러자 토정 선생이 급히 소리쳤습니다.

“어서, 어서. 염포교가 뒤를 쫓아왔다!”

내가 휘휘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토정 선생의 말을 믿고 양성지 선생의 묘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가파른 길이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서, 어서!”

토정 선생이 재촉하자 힘을 내어 중간쯤 올라갔는데 말을 탄 포졸 십여 명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놀라서 빨리 발을 옮기려 했지만, 발이 천근만근입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낑낑 거리며 올라가는데 염포교 일당도 우리를 본 모양입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쫓아왔습니다. 조금 있더니 퓨융 퓨융 하고 화살까지 날아와 하마터면 맞을 뻔했습니다. 마침내 양성지 선생 묘 앞까지 왔을 때는 몸에서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풍문, 어서 묘 안으로 뛰어들어야 해.”

양동이가 묘 앞으로 달려들자 쑥 하고 사라졌습니다. 힘이 다 빠진 나도 달려오는 염포교를 보자 돌미륵을 번쩍 들고 묘지로 뛰어들었습니다. 과거 시대로 돌아가는 순간입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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