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운 발행인

드디어, 대륙을 지배하던 잠재된 우리의 거대한 영혼이 깨어났다. 중국에 밟히고, 일본에 짓밟히고, 동족 간 전쟁과 반목에 크게 반성하면서, 누구에게도 억눌릴 수 없다. 지지 않은 불꽃을 일으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대국이 됐다. 교육입국의 성공은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이제 13년간 143조 원의 세금을 퍼부은 출산율 올리기 국가정책은 잠시 중단해야 한다.
우선은 가족문화, 사회문화 정신을 개선 변화시키는데 주력하는 게 우선순위다. 젊은이들은 무책임한 젊은이를 만든 기성세대와 함께 통렬한 분노와 반성을 해야 한다. 누구도 여건마다, 사정마다 다르다는 건 알지만 사회문화가 변화해야 결혼도 출산도 변화한다. 조선조의 나태한 문화의 재현은 있을 수 없다.


파업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오늘날은, 파업의 유형 또한 다채롭다. 소위 “출산파업”이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스스로 불행하다는 틀을 씌워놓고 그 속에 갇혀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모든 잣대는 “내 인생의 행복”이다. “너의 행복은 그다음이다”라고 한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국민 모두의 반성이 필요할듯하다.
일제강점기, 향후는 지배당하지 말고 살아보자는 결심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기아와 질병이 만연한 삶의 현장을 벗어나자는 국민적 공감대, 그리고 추위와 더위와 싸워가며 세상 존재하는 국가들의 멸시와 조롱을 인내하면서 모진 세상을 겪은 희생으로 후세는 잘 살고 어깨 펴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염원 하나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또 일했던 것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이다.

그들의 손은 상처투성이 두꺼비 손이 되었고 일의 현장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건강진단도 없는 시대에 병마로 시달리다 쓰러져갔다. 1960년대 우리의 수명은 50세 초반에 불과했다. 산업이라고는 5천 년 전통이라는 농사뿐이 없고, 그것도 손발이 찢어지고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이 따라야 겨우 먹고만 살아가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공장을 한다는 것은 기술도 실력도 더구나 자본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몸으로 뗄 수 있는 서독의 광물을 캐는 노동자나 간호사, 월남 전쟁에 파견한 우리 젊은 군인들의 핏 값과 일제 35년 간 값진 재산을 다 뺏기고 몸과 영혼까지 탈탈 털린 대가의 대일 배상금으로 처음으로 공장이라는 걸 만들고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산업화의 첫발이었다.

얼마나 구슬프고 처참한 현대사인가! 형제자매는 큰아들 하나만 공부시키고 나머지 자식들은 농사짓고 공장 다니며 형의 학비를 대고 가사를 돌봐야 했다. 머리가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공부 시킬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던 50, 60년대를 지나면서, 배워야 산다. 가르쳐야 우리처럼 살지 않는다는 신념 하나로, 그야말로 죽도록 일해가면서 자식들을 대학으로, 대학으로 보냈다.
최소한 아버지와 어머니보다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남들처럼 잘살아 세상에서 괄시받지 않고 핍박받지 않도록 자식에게 모든 것을 올인한 세대가 지금의 50대 이후의 세대들이다. 지금도 용기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지자체 평생학습센터를 통해 한글을 배우는 분들이 있다. 80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보고 글자를 통해 유명을 달리하신 아버지, 어머니도 불러보고 부모에게 못다 한 정과 그리움을 담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분들의 자식들은 부모의 까막눈 덕분에 공부할 수 있었고 지금의 40대 이전 세대는 등 떠밀리듯, 주변의 친구들이 대학 가니까! 그렇게 90%이상이 대졸생이 됐다. 부모의 욕심은 하나다. “부모보다 제발 잘살고 출세하거라” 농촌은 물론 지방도시 젊은이들은 서울로, 서울로 향했고 서울이 포화상태가 되니 경기도가 수도권이라는 미명으로 함께 팽창하여 이제 인구도 경기도가 1위요, 서울이 2위가 됐다.

농촌과 지방도시 공동화 현상은 기성세대의 “우리 자식은 서울에서 살아야 성공한다”는 비뚤어진 신념과 부족한 실력과 기술을 젊은이 스스로 더 잘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서울로만 향한 결과가 수도권 과잉과 지방의 몰락을 가져왔다. 아무리 지역균형발전을 국가가 외쳐도 소용이 없는 정책이 돼 버린 것은 이런 사유가 있다.
지금이라도 부모들은 자식들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기대감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자식들도 부모의 무조건적인 희망적 기대에서 냉정한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 자신에 맞는 인생을 그려 갈 수 있다. 제조업 중소기업에는 취업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의 불문율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떻게 정착한 것일까? 저임금의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몇 군데 할망정 힘든 일은 할 수 없다. 부모도 좋은 직장 구하기 위해 임시적 알바는 용인하는 추세다.

중소기업에 가는 순간 부모에게 미안하고 친구들 만나기도 꺼려지고 자존심도 상한다. 마치 자신의 인생이 3류가 되는 듯 여긴다. 안정적 직장을 도외시한 결과 중소기업은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인력이 대거 유입됐고 제조기술도 그들이 보유했다. 젊은이들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인식하니 중소기업 가기가 더 껄끄럽다. 예전에는 그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해도 갖기 어려웠던 시절이 불과 몇 십 년 지나지 않았건만, 격세지감이 크다.
안정적 일자리가 없어 떠도니 세월은 가고 결혼 적령기도 뛰어넘고, 20대 여성 출산율보다 30대 중후반 출산율이 높은 기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구직포기, 결혼포기, 자식포기 등등 행복권을 반납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합계 출산율은 0.9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 아니라 최저다. 왜 이토록 된 것인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국이고, 선진국보다 더 삶에 대한 다양성이 뛰어난 것이 분명할진대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안 한다. 출산을 하는 순간 일자리가 날아갈 수 있고, 육아에 따른 교육과 아이들 간의 비교 사치가 엄청난 비용으로 작동한다. 배알이 꼴려 배 아프느니 아예, 포기다.

대별해도 학원의 종류도 수 십 종이고 다른 아이들 유행하는 값비싼 신발 신겨야 하고, 장난감 가격도 몇 천 원짜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 몇 만 원에 몇  십만 원이다. 옷이며 가방이며 학용품에 스마트폰에, 해외여행도 아이 기죽지 않게 하려면 이런 게 모두 기본이다. 최고 수준 따라 하기가 자신의 처지 여부를 떠나 당연시하는 세상이다. 그럴 자신이 없으니 결혼도 아기도 포기다.
부모세대는, 남의 자식 잘되는 것 배 아파, 자기 자식만 독려하더니 돌아온 것은 부모와 자식의 갈등과 절망이다. 오늘 현상은 가족문화와 사회문화의 대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부모세대도 자식세대도 비뚤어진 생각과 가면을 과감히 벗고 더 솔직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어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사과하고, 사회에 존재하는 교육기관, 언론, 지성집단들이 중대한 책임감으로 사회현상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젊은이들의 슬픔을 나무랄 것만 아니라 위로와 격려로 따뜻한 정성을 보내보자. 우선은 출산분위기 전환이다. 그런 다음에 국가가 지원해야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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