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를 한 잔 들이마신 나는 재담을 이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책을 멀리하자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러면 친정아버지와 오라비와 함께 공부하라고 했다가 면박만 받았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옛날이야기나 하면서 놀기로 해요.”

양반의 딸로 총명한데다 공부도 좀 한 부인은 남편을 달래기로 했습니다. 우선 자기가 읽은 내용의 글을 읊어주고 다시 이야기하라 하니 한 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인은 그제야 남편이 뭔가 문제는 있지만, 머리는 비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각종 역사책과 경전을 이야기로 들려주었습니다. 현대식으로 하자면 스토리텔링 교육이지요.

“여보시오, 부인 매일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디서 난 이야기요?”

어느 날 김안국이 부인에게 묻습니다. 저라면 이 혹에서 나오니 떼어 가라 하겠지만, 부인은 선뜻 대답합니다.

“서방님, 이게 다 책에 있는 내용이랍니다. 제가 책에서 읽고 말하는 거예요.”

“그렇소? 그러면 그 책을 가져와 주오.”

부인은 득달같이 책을 가져와 펼쳤습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김안국은 재미있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아내에게 글을 배운 후로 독학으로 많은 책을 읽고 글씨를 쓰고 문장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별채에서 나오지 않던 김안국이 의관을 정제하고 장인과 처남이 있는 사랑방으로 나가자 모두 놀랐습니다. 턱 하니 자리 잡아 앉자 도도한 언변으로 학문을 논하는데 기절초풍을 할 정도였습니다. 장인이 급히 딸을 불러 까닭을 묻자 공부한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날부터 김안국은 안동의 재사들과 학문을 겨루는데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자 장인은 향시를 보게 하니 스물넷에 턱 하니 붙고 이년 뒤에는 대과를 치르기 위해 서울로 올려 보냈습니다. 김안국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기억하고 어려서 자신을 길러준 유모의 집에 머물며 과거를 준비했습니다. 좌중의 손님들은 손에 땀을 쥐고 제 입만 쳐다봅니다.

“과거 시험에는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오대 조 이름을 다 적어서 신분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김숙의 아들 김안국이 그만 장원급제를 한 것입니다. 고시관이 모두 김안국의 아버지 김숙이 사는 집으로 가서 찾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김숙은 격분했습니다.”

서울에 들어오면 죽여버리겠다는 명령도 어긴 데다 천지밖에 모르는 놈이 장원급제했다니 분명히 남의 답안지와 바꿔치기한 것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인을 시켜 아들을 붙잡아 왔습니다. 손수 몽둥이를 들어 때려죽이려 하니 고시관들이 말리고 진짜로 김안국이 답안지를 작성한 것을 확인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무릎을 꿇은 아들이 공부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니 그제야 몽둥이를 내려놓고는 크게 웃었습니다.

“하하하, 이게 꿈이냐 생시냐? 이제 우리 집안의 명성을 이을 수 있겠구나.”

하며 아들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용서를 받고 장원급제자로 삼일유가를 끝낸 김안국은 대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것입니다.

“이렇게 김안국 대감은 부인의 가르침으로 문맹을 벗어나서 훌륭한 대문장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공부가 어렵다 하지 말고 이야기다 재담이다 생각하고 공부하면 모두 잘할 수 있습니다.”

다음 말을 이르려다가 낯익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뺑덕이가 기둥 뒤에 숨어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습니다.

“여보슈, 재담꾼, 하나 더 해 주시오.”

너도나도 재담을 청하니 목을 가다듬고 바라보니 뺑덕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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