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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Job은 줄어들고 Vocation이 늘어나는 사회
전하진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이러한 구심력이 붕괴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추종하던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으며, 애국심도 식어가는 듯 하다. 돈에 대한 생각도 다양해졌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우리의 삶을 상당히 지배하던 교육에 대한 열정도 심하게 왜곡되고 말았다. 이런 반작용으로 사회주의가 대안으로 떠오르긴 하나 그 실효성은 의문이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왕성한 에너지를 공급하던 구심력이 점점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눈에 원심력은 잘 보이지만 구심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원심력은 구심력에 의한 것일 뿐인데도 그 구심력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은 잘 보이질 않는다. 그저 눈에 보이는 원심력만으로 어떻게 하든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임기응변적인 대응만이 난무하다.

구심력이 붕괴되면 원심력은 발휘되지 않는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구심력의 붕괴로 방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미디어를 통해 비치는 우리 사회의 단상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좀처럼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과연 일자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다. 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일자리가 과연 10년 20년 뒤에도 유효한 것인지에 따져봐야 한다. 정규직 문제도 그렇다. 과연 정규직이 미래에 로봇이 할 일인지 인간이 할 일인지 조금만 생각해도 알만한데 그 조차도 고민하지 않는다. 무작정 공무원도 늘리는 것도 앞으로 급격하게 축소될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임기응변의 정책이다. 필자가 보기엔 공동체 스스로 자치활동이 늘어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로 진화될텐데 그렇게 되면 공무원 정원은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출산율의 증가가 노동인구를 증가시킬 것이란 믿음도 로봇의 대규모 증가로 생산인구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일인지 반문해 봐야 한다. 어쩌면 안락사의 합법화가 빠르게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지 모른다. 결국 경제규모의 확대만이 우리의 삶의 질과 행복을 담보한다는 오래된 믿음에 반문을 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구심력이 붕괴되고 있는 것일까.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얻어 물질적 팽창이 선으로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그것을 어떻게 정교하게 배분할 것인가가 선이 될 것이다.
 
<노동없는 미래>의 저자인 팀 던럽은 '완전 고용'이 아닌 '완전 실업'를 지향해야 한다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해 온 일과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노예들의 활약은 인간의 상상 그 이상이다. 이런 기계노예들의 활약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고민해야지 그들과 경쟁해서 그들이 가져간 일자리를 되찾아 오겠다고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일과 삶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염전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던 노예를 발견하고 해방을 시켜 주었더니 얼마 안 가 다시 돌아와 노예의 삶을 계속하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이 없다면 지금의 일자리가 전부일 수 있지만 이제 그 상황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보다 더 큰 꿈을 꾸고 더 나은 삶의 욕구를 향해 나아가는 자들만이 원하는 세상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인간이 아닌 기계노예들과 삶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야 하는 지옥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기계노예들이 대신해 줄 일을 억지로 붙잡으려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지금의 구심력 붕괴는 바로 이런 무의미한 노력의 결과가 초래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계노예들에게 일자리를 넘겨 준 후에 인간이 진정 무엇을 해야 할 지 그것을 찾는 것이다. 새로운 구심력의 창조 이것이 바로 일자리 문제의 핵심이요 근본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일자리를 기계노예들이 대신하면 그것이 비극이 아니라 인간에게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인간의 일자리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미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Job 이 아니라 Vocation을 추구한다. 소명이라고 할 만큼 그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돈이 벌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도 있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내면의 만족을 위해 노력한다. 켄 로빈슨 교수는 <엘리먼트>에서 타고난 재능이 열정을 만나는 지점을 '엘리먼트'라 정의했는데 뭔가에 몰입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몰입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엘리먼트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자가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굳이 이런 정의를 따르지 않더라도 우리가 꿈꾸는 삶은 바로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며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절정감을 경험하며 사는 것일게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며 살고 있는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스스로 시간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아실현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아실현이라는 것은 자발적 동기에 의해 자신 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각 자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추구하게 되며 그 행복의 내용이나 강도도 자신만의 잣대로 측정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모두가 동일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삶을 강요받으며, 다른 이가 제시한 척도에 자신을 맞춰가며 살아간다. 내면의 만족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한다. 내가 행복하기 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인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기 보다는 화폐노예로서 사회의 부품으로써의 역할에 더 충실하게 사는 지 모른다. 누차 강조하지만 이제 그런 역할을 기계노예들이 하게 된다. 언젠가 그들도 우리처럼 해방을 요구할 지 모르지만 그 걱정까지는 지금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기계노예들로 인해 지금처럼 경제가 어렵고, 취업도 안되고, 일자리도 사라지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자아실현이라는 게 가능한 일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면 분명히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그런 삶을 추구하도록 교육받지도 않았고, 사회적 통념이나 시스템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새로운 구심력을 하나하나 바로 세워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밀레니얼 세대는 그런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부모세대가 요즘 젊은이들은 아는 것만 많고 실행력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자주 드러내곤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문제라기 보다 부모세대가 가진 낡은 구심력이 더 큰 문제다. 자신들의 20대를 회상하며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사람을 동물취급하는 것 같다고 봐야 한다. 꼰대라는 단어는 그런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들이 원하는 일에는 모든 것을 투자할 수 있는 열정이 있다. 단지 그것이 뭔지를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교육이나 사회가 각자의 개성을 살려 자아실현인을 육성하고 있지 않고, 우리들 대부분은 자아실현인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욕구는 매슬로우가 주장했던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중의 욕구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단계이며 마지막 남은 자아실현 욕구를 구현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사회시스템이나 대부분의 인간이 이러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구심력 붕괴의 정확한 이유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이제 진정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를 누구나 구현할 수 있는 자아실현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사회를 위한 새로운 구심력을 창조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바로 Job이 아니라 Vocation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인프라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하위욕구는 인프라가 충족해 준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혁신적 기술은 새로운 용어를 쏟아내며 기존의 구심력을 방해한다. 그로 인해 주거환경, 교육, 경제시스템등에 새로운 개념이 스며들고 있다. 주거환경에는 자급자족도시, 스마트시티, 메이커시티 등의 개념이, 교육에는 원격교육, 자아실현교육, 멘토링 등 기존의 현실교육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들이 요구되고, 경제시스템은 공유경제, 구독경제, 토큰경제, 플랫폼 경제 등 새로운 형태로 진화되고 있다. 또한 블록체인 등의 기술로 인해 국가에 대한 개념도 새롭게 정의될 처지다. 이처럼 기존의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등의 우리 사회의 구심력으로 작용하던 모든 것들에 새로운 혁신이 스며들고 있다. 마치 낡고 퀴퀴한 창고 바닥의 낡은 카펫이 들쳐져 어둠 속에 가려져 있는 수많은 벌레들이 햇살에 노출되어 우왕 좌왕 살길을 찾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블록체인과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인간의 자아실현 욕구를 위한 새로운 구심력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이제 모두가 나서 진정으로 이 다음 시대가 요구하는 구심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햇살이 비친 창고를 새롭게 정리하 듯 새로운 구심력을 하루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자녀세대의 희망이 될 것이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일자리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이 될 것이다. 비록 기존의 모든 시스템이 구심력을 잃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겪어 내야 하겠지만 인류는 새로운 구심력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 틀림없다. 그 기회를 가급적 우리가 잡게 된다면 그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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