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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소선비의 가난 탈출 <97>

상인의 배는 떠나고 나는 다시 김포로 가는 배를 수소문하고 있는데 흙집에서 만난 양반 상인과 마주쳤습니다. 재담꾼 혹부리 영감이야기를 했더니 육주비전의 상인들이 저를 초청한 것입니다. 저는 그 부자들이 혹이 달린 저를 보면 싫어할 것이라고 사양했습니다. 종로에는 나보다 인물 좋고 말 잘하는 전기수들이 수두룩할 것이기도 하고요.

“아니요, 아니요. 재담에는 재미도 있거니와 교훈도 있어야 하지 않소? 종로의 전기수들은 삼국지나 잘 읊을 뿐이오.”

양반 상인의 간곡한 청으로 나는 종로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말을 타고 가라고 했지만, 평생 뚜벅이가 내 형편에 맞아 걷기로 했습니다. 양반 상인은 일 처리를 마치고 가겠다고 남았고 나는 그가 알려준 육주비전으로 갔습니다. 예전에도 몇 번 가본 적은 있지만 갈 때마다 번창한 것이 종로입니다. 종로를 운종가(雲從街)라고도 부르는데 구름떼처럼 사람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습 때문입니다. 내가 비단전 행수를 찾으니 피맛골에 데려가서 점심으로 전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어슬렁거리다가 저녁때 다방골 주인집으로 갔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집이었습니다. 상인이 이런 큰집에서 사는 것을 보니 든든한 뒷배가 있나 봅니다. 저녁을 거하게 먹고 마당으로 나가니 곳곳에 횃불이 켜있고 돗자리 위 보료 위에 상인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포에 사는 풍문입니다. 혹부리 영감이라고 하지요. 여러 편의 재담 중에 처음은 우리 동네 소선비 이야기입니다. 저의 스승인 토정 이지함 선생과도 얽혀 있지요.”

토정 선생 이름이 나오니 좌중이 술렁거리고 내가 그분의 제자라니 더욱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으쓱대는 마음을 억제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소선비는 부모 형제도 없는 가난한 양반이었습니다. 신분이 양반이다 보니 장사를 할 수도 없고 손바닥만 한 논밭도 과거 공부하느라 모두 날려 완전히 무일푼이 되었습니다. 절망한 선비는 더 살 희망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밧줄을 들고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목을 매고 죽으려는 것이지요. 이때 토정 선생이.”

내가 잠시 멈추자 상인들은 잔뜩 긴장해서 바라보았습니다.

“토정 선생님이 앞을 가로막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선비의 관상을 보니 산에 가서 호랑이를 잡을 상이네. 그리고 호랑이를 잡아 관아로 가면 돈을 좀 얻을 수 있을 것일세. 그리고 나면 그 돈으로 이리이리 하게. 하지만 소선비는 코웃음을 치고는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며칠 굶어 힘이 빠졌는데 호랑이를 잡기는커녕 호랑이 밥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기 때문이지요.”

소선비가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는데 호랑이가 엉덩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 자세히 보니 호랑이가 급히 달려가다가 삐죽 내민 소나무 가지에 찔려 죽은 것이었습니다. 소선비는 들고 있는 밧줄을 호랑이 목에 걸고 잡아당겼습니다. 숲 입구에는 이곳에 출몰하는 식인 호랑이를 잡아 관아에 오면 상금을 준다고 쓰여 있는 팻말을 보았습니다. 소선비는 토정 선생에게 감사하며 놀라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관아로 갔습니다. 연약한 선비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말에 원님은 약간 의심이 들었지만, 쉽게 현상금을 내주었습니다.

“소선비는 그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선비는 강가로 나가 급히 인부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반나절을 그늘에서 쉬게 했는데 통나무들이 쓸려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비로소 소선비는 인부들로 하여금 바다로 떠내려가는 나무들을 붙잡아 엮었었습니다. 상류에서 벌채후 묶은 끈이 풀어져 유실되었던 것입니다. 소선비는 상류로 올라가니 벌채꾼들은 망연자실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거둔 것을 말하자 어차피 잃은 것이라 소선비에게 헐값에 팔았습니다.”

선비는 토정 선생의 충고대로 떠내려오는 통나무를 거두지 않았더라면 바다로 쓸려갔을 것입니다. 며칠 뒤에 급히 나무를 구하는 목수에게 몽땅 팔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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