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말에 상인들은 별 감흥이 없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양반 이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말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우선 헛기침 몇 번 하고 다음 이야기로 들어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소는 집안의 큰 재산입니다. 동네에 소가 두 마리만 있어도 풍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느 농부가 송아지를 정성껏 키워 큼직한 암소를 만들었습니다. 마침 장날이라 꿈에 부푼 농부는 암소를 좋은 값에 팔 궁리를 했습니다.”

농부는 몇 년 전 송아지를 시장에서 샀을 때 가격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먹여 키운 사료값을 계산했습니다. 손짓 발짓으로 계산을 마치고는 얼마를 받을까 궁리했습니다.

“이웃집 돌쇠가 우리 암소보다 약간 컸는데 몇 냥 받았더라?”

농부는 돌쇠네보다 더 받을 것으로 다짐했습니다. 돈을 받는 광경을 상상하니 온몸이 짜릿했습니다. 이 돈으로 송아지를 몇 마리 더 사서 키울까? 아니면 커다란 황소와 맞바꾸어 논을 갈게 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황소를 사기로 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황소로 살 거야. 그래서 우리 논부터 갈고 그다음은 누구를 빌려주나? 으음, 불알친구인 만수를 빌려줄까? 아니면 이쁜이네 과부댁?”

청상과부인 과부댁을 머리에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친구고 친척이고 간에 맨 먼저 빌려주어 환심을 사고 싶지만, 아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볼 테니 뒤로 미루어야 할 것이다.

밤새 궁리하다가 새벽에 잠이 든 농부는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부스스 잠에서 깬 농부는 서둘러 외양간에서 암소를 끌어냈습니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저녁때까지 돌아오지 못할지 모릅니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암소를 몰고 고개를 넘어갈 때였습니다. 비단 신이 바닥에 버려진 것이 보였습니다. 얼른 뛰어가 집어들었는데 한 짝이니 신을 수가 없습니다. 아쉽지만 그냥 놔두고 고개를 막 넘어갔는데 비단 신 한 짝이 또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이런. 그냥 들고 올 것을.”

농부는 다시 돌아가 비단신을 가져오면 짝이 맞을 것 같아 가려다 암소를 끌고 가면 시간이 늦을 것 같아 근처 나무에 묶어두고는 부리나케 뛰어가서 비단신 한 짝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암소를 묶은 끈이 잘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암소를 노린 도둑의 짓이었습니다. 한순간의 욕심이 큰 손해를 입힌 것이지요. 제 말이 끝나자 상인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분에 넘치는 욕심을 품었다가 낭패 본 일이 기억났나 봅니다.

“어떤 사내가 이거저거 일을 하다 다 실패해서 마지막 재산을 털어 옹기 장사로 나섰습니다. 한참 젓 담글 시기라 옹기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정보를 입수했거든요.”

이번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옹기를 지게에 잔뜩 얹고 시장을 행했습니다. 언덕길을 헐떡거리며 올라갔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갑니다. 사내는 땀을 닦기 위해 지게를 잠시 세워 놓았습니다. 멀리 시장이 보입니다. 이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시장으로 가면 옹기 값을 산 값의 두 배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이 옹기를 모두 팔면 열 냥을 받을 거야. 그러면 열 냥으로 서해에서 잡아 온 조기를 사야지. 그것을 시전에. 아니지 조기를 말려서 굴비로 만들면 몇 배에 더 비싸게 달 수 있어. 굴비를 팔면 서른 냥은 벌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것으로 무명을 사서 북쪽에 가서 팔면 육십 냥이 손에 들어온다 이거야. 그 돈이면 장가를 갈 수 있겠지.”

옹기 장사꾼의 혼잣말은 계속되었습니다. 마침내 큰 집에 첩까지 둔 상상을 했습니다.

“첩이 하나면 마누라하고 다툴 테니 둘이나 셋을 두자. 아냐, 그러면 다툼이 더 심해질 텐데. 그러면, 이년들아 가만히 있지 못해. 라고 야단을 쳐야지.”

첩들 간의 싸움을 막는 시늉을 하다가 그만 지게를 넘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쨍그렁.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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