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센치의 전복  
                                                            송기영  

전복, 전철에 올라타 입 벌린 채 침 흘리는 전복. 꼭 사십오 년을 살았고, 차장 진급을 앞둔 전복. 이마 껍질이 약간 닳은 전복, 눈에 분비물이 자주 끼지만, 그래도 아직 탱탱하다고 칭찬받는 전복. 기본적인 양식을 갖춘, 거기서 양식되는 전복. 자기 속은 아무래도 안 보이고. 발랑 까진 것들을 곁눈질하며 옆구리에 혀를 차는 전복. 조금만 젊었어도 무능한 전복들의 씨를 싸그리 말렸을 전복. 하지만 아무도 말릴 것 같지 않아 재빨리 눈길을 돌린 전복. 가쁜 숨을 삼키며 마른 입술을 핥는 전복. 고지혈증 판정을 받았지만 아직은 탱탱하다니까, 마음까지 신선한 전복. 다음 날 아침이면, 자신의 먹을 죽이나 쑤는 전복. 기쁜 우리, 전복.

[프로필]
송기영 : 서울,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 [세계의 문학]신인상.

[시 감상]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불황의 늪을 허우적거리는 중년의 이야기는 넘치고 넘친다. 작금의 중년 세대는 복합적인 요소들로 인해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그 자리가 그대로 ‘제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전복되다와 전복시킨다는 분명 다른 말이다. 나는 지금 전복되었는가? 아니면 전복된 나를 다시 일으키려 하고 있는가? 가을이 온다. 그 독한 여름도 이겨냈는데 뭐가 더 어려울까? 다시 한번 질끈 동여매고 눈 부릅뜨고 삶을 향해 질주하자. 넘어져야 일어나는 법이다.
[글/ 김부회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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