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재산도 모두 빼앗아 맘대로 쓰는 세상은 한마디로 “저주의 혼돈”이다.
인정할 수 없는 세상이다. 혼돈이란 질서가 없고 엉켜진 엉망진창을 말한다. 그 주어가 “저주”라면 일본이다. 과거 한짓을 보면 심한 말도 아니다.

일본은 지금도 몇 분 살아남지 않은 전쟁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윤간과 학대의 고통을 간직한 “슬픈 할머니”들께 단 한마디의 사과도 안 하고 있다.
독일은 수상마다 전쟁범죄 사죄에서 무릎을 꿇고 진솔한 위로와 용서를 구하는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인 비열하고 오만한 일본 민낯이다.

일본이 그토록 오만함을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도 우습다. 우리가 너희보다 지금도 강하다”이다. 임진왜란 7년의 전쟁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참혹한 죽음과 수탈의 광기 마당이었다.

그 치열한 전쟁을 겪고도 갑(甲)질의 원조 연원을 가진 양반사회는 건재했고, 왕권도 건재했다. 실사구시가 결여된 반쪽 학문 성리학에만 매달렸고 물질의 생성 속에서 부를 찾지 않고 탐관오리의 사슬에서 부를 만드는 권력과 세력 위주의 자가당착적 싸움만 지속했다. 

임진왜란 후 양반사회는 무너져야 할 첫 번째 개혁과제였지만 양반이 기득권을 놓지 못하고 주류사회의 반성과 혹독한 인적·정치적 청산이 없었다는 것이, 결국은 부패와 방만의 세월을 불러들였고 성리학 중심 유림의 유연성과 창조성 없는 완고함도 국가의 명운을 재촉하는 촉매 역할을 담당했다.

나태한 국가운영은 국가가 하나뿐이 없을 때나 가능하다. 7년의 전쟁 후에도 왕권이 존속하고, 양반이 존속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임진왜란 직후 전봉준의 농민의 난이 일어나고 세상이 새롭게 개혁됐다면 일제강점 35년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배움은 양반의 몫이고, 국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우매한 국민이 애국에 대한 인식이 깊을 수 없었다. 배움이 인간을 생각하게 하고, 생각이 변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동력이 되고, 번영은 정신과 무력의 강함을 탄생시키는데, 양반 이외의 다수 계층은 배움의 기회가 박탈당했고 생활의 지혜만 있을 뿐이어서, 일본의 강점에서 벗어나는 정신적 봉기의 횃불은 유일하게 3.1 운동뿐이었다.

3.1 운동은 1910년 한·일 합방 후 9년째였고 해방되기 전까지 26년에 위치한다. 독립군이 한반도 탈환을 못하고 광복된 것을 원통하게 여겼지만 당시 한반도 내 우리 국민들은 특히, 조직적으로 저항의 싹들을 살려내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오늘의 반성문을 써보자.

우리는 왜 좋은 대학에 미쳐있는가?
우리는 왜 법조인과 의사만 돼야 하나?
우리는 왜 서로만 잘났다고 하나?
우리는 왜 숫자로 말 못 하고 허세로 말하나?
언제 일본이 우리를 두려워할까?
언제 중국의 그늘을 벗어날까?

정치인들은 싸움질만 하지 말고 국민을
통합시켜라, 그래야 힘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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