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제 차례입니다. 가문돌은 우리의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호롱불을 켜놓고 방에서 나갈 생각을 안 합니다. 나는 어죽을 한 국자 떠먹고 재담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집에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맞이로 집에서 기르고 있던 닭을 잡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는 것을 밖에서 놀다 들어온 아들이 보았습니다.”

닭은 잡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결국 붙잡혀 목이 졸리고 털을 벗겨 알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퐁당 뜨거운 물에 담가져 삶기 시작합니다. 주인집 아들은 침이 꼴깍하고 넘어갑니다. 아버지와 한담을 나누던 손님 앞으로 닭 한 마리가 든 그릇이 놓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무언가를 가지러 밖으로 나와 안방을 향했습니다. 침을 꼴깍 삼키던 아들은 손님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습니다.

“야아, 저 사람 봐라. 죽은 닭 먹는다, 죽은 닭 먹어!”
아들의 외침에 손님은 젓가락을 멈췄습니다. 죽은 닭이라는 말에 입맛이 뚝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상을 앞으로 밀어내는데 아버지가 돌아왔습니다.
“아니, 왜? 상을 물리십니까? 닭이 맛이 없습니까?”
“아, 네. 속이 좋지 않아서요.”

그러자 아들이 날름 들어와 아버지에게 손님이 넘다 남긴 닭을 먹어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가 먹으라고 하자 아들은 덥석 닭을 잡어다 뜯어 먹습니다. 아버지는 손님에게 가져온 것을 건네주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손님은 화가 나서 꾸짖습니다.
“이 녀석아, 너는 왜 죽은 닭을 먹는 거냐?”
그러자 아들이 싱글거리며 말했습니다.

“아이구, 아저씨도 그럼. 사람이 죽은 닭을 먹지, 산 닭을 먹습니까? 아, 맛있네요. 죽은 닭.”
이렇게 어른이 아이에게 놀림당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토정 선생 차례입니다.
“내 친구 중에 우스갯소리 잘하는 친구가 있다네. 어느 친구 집에 말을 타고 놀러 갔는데 손님대접이라고 나온 것이 탁배기에다 고염 아니겠나? 자네는 술을 먹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술안주에 고염은 안 되는 것이라네.”

고염은 감의 일종인데 술과 함께 먹으면 술이 깬다고 해서 술상에 내놓지 않습니다. 그러자 손님이 웃으며 주인에게 말합니다.
“이보게. 술안주가 없나 보네. 내 마련할 테니 준비하게.”
하더니 마당 한구석에 매인 말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저걸 잡아 술안주로 하세.”

주인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아니, 여보게. 자네는 집까지 뭘 타고 가려고 하나?”
그러자 손님은 마당 한구석에서 병아리와 함께 모이를 쪼고 있는 닭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음, 이따가 저 닭을 타고 가려 하네.”

주인은 손님의 풍자에 허허 웃고는 하녀를 시켜 조기를 굽게 하고 몇 년 후에 먹으려고 담근 인삼주를 꺼내와 대작했습니다. 술이라는 소리에 가문돌이 얼른 밖으로 나가더니 탁배기 술동이를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토정 선생에게 한 잔 올렸지만, 돌미륵이 먹을 수가 있나요? 뒤늦게 깨닫고는 제게 술잔을 들이밀었습니다. 몇 잔 들이켜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밖에서는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이 정체가 들통이 날까 봐 술 마시는 것을 억제했지만, 여기서야 그럴 일이 없지요. 취하니까 대담해졌습니다.

“스승님, 제 차례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기억을 잊는다고 하지요?”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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