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사설·기고
[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사돈집 <86>

나는 시치미를 떼고 재담을 시작했습니다.
“스승님, 이슬비와 가랑비가 왜 다른지 아십니까?”
“그거야 비슷하지 않은가. 비가 조금씩 오는 거,”
토정 선생은 내 말이 엉뚱하다고 느끼셨나 봅니다. 하긴 가랑비나 이슬비나 다 같은 비이지요. 그래도 재담은 그런 것도 쉽게 나가서는 안 됩니다.

“아니지요. 어느 집에 사돈이 찾아왔습니다. 딸을 시집보낸 지 삼 년이나 지난 터라 어떻게 사는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본래 주인이 몹시 인색한 사람이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사돈을 홀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술상을 차려 술을 권하며 며느리 칭찬을 했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오고 가면서 유쾌한 밤이 되었고 으슥해지자 사돈은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그 다음 날은 근처 명승지를 안내해 달라고 하자 주인은 도시락을 싸서 함께 유람을 갔습니다.
꽃구경하고 돌아오니 어둑어둑해진  지라 저녁밥을 먹고 술을 푸기 시작했습니다. 하하 후후.
“여보시오, 사돈. 우리처럼 의좋은 사돈은 어디도 없을 거요. 이 근처에 유명한 절이 있다는데 내일은 거길 갑시다.”
사돈의 말에 주인은 입안이 썼지만 어쩔 수 없이 승낙했습니다. 귀한 딸을 시집보낸 사돈 아닙니까.
 그래서 다음 날도 도시락 싸서 절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폭우가 쏟아져 며칠 더 묵으려 술을 마셨습니다.
주인은 폭발할 것 같은 심정이었으나 꾹 참고 있는데 빗줄기가 가늘어졌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중얼거리듯이 말합니다.
“사돈, 오랫동안 집을 비워 두기가 걱정되겠습니다. 그래서 어서 가시라고 가랑비가 내리는군요.”
그러자 눈치가 없는지 뻔뻔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돈이 대꾸합니다.

“내가 며칠 없다고 집에서 무슨 일이 나겠습니까? 더 있으라고 이슬비가 내리는군요.”
그러자 토정 선생이 흐흐 웃었습니다.
“재미있구만. 내 친구 중에 구두쇠가 있네. 그 친구는 집 식구에는 그렇지 않으나 손님에게는 몹시 박대하는 성격으로 나도 그 집 가서 얻어먹은 것은 우물물뿐이었네.”
토정 선생은 작은 입을 씰룩거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집의 아들이 성장해 혼인하게 되어 멀리 떨어진 마을 김 초시댁 딸을 며느리로 맞게 되었습니다.

김초시는 남에게 박대한다는 평판에 사람을 시켜 몰래 염탐해보니 가족끼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허락을 했습니다.
혼인 때도 별 이상이 없기에 떠도는 소문은 오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났습니다. 딸을 출가외인이라고 시집가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아버지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탈 없이 잘사는가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불쑥 나타난 친정아버지를 보고 딸은 몹시 놀랐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시집식구들은 친정아버지를 어찌 대할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반년 동안 교육시킨 결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때는 점심시간이라 딸은 밥상을 차려 내왔습니다. 밥상에는 밥 한 그릇, 간장 한 종지 그리고 큰 그릇에 김치가 한 포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친정아버지는 난감했습니다. 먹음직스런 김치이지만 체면이 있지, 손으로 찢어 먹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간장만으로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상을 물린 뒤에 변소를 가다가 슬쩍 부엌으로 갔습니다. 시어머니와 그 집 며느리가 된 딸이 귓속말합니다.
“나는 네가 큰 그릇에 김포 포기를 올려놓는 것을 보고 가슴이 덜컥했다.”
“호호호 잘게 찢어놓으면 김치를 먹을 수 있지만 이렇게 통째로 놓으니 그냥 나오잖아요.”
친정아버지는 그제야 이 집 전통에 물든 딸을 괘씸하게 여기고 다시는 찾지 않았답니다.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김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