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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을 채우는 선의(善意)
박태운 발행인

인생의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한 인생이라 사람들이 말할 뿐이다. 그러나 정작 그 내면은 불신과 오만과 허망함이다. 인간의 삶은 일상의 안전과 평화와 감사를 추구하지만, 불신으로 종말은 허망하다. 방법도 서툴다. 우리는 부족함을 덕목으로 선의를 사방에 뿜어대야 그러한 것들의 향기를 비로소 즐길 수 있다. 선의가 먼저가면 최소한, 불신은 적어진다.

오늘날 세계 80억 명이 살아가는 모습을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1초에 한 사람씩 볼 수 있다면 9,250일 250년이 걸린다. 잠도 안 자고 250년은 살아야 현세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스쳐가듯 만날 수 있다.

엄청난 수효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관계하는 사람들은 수천 명 수준이지만,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일상의 관계인은 1백 명 미만으로 줄어들고, 1주간 내에 한번 이상 소식을 주고받는 친밀한 사이는 불과 10명 미만이라고 한다. 내 주변의 10명은 누구인가? 부족한 숫자인 듯도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10명 찾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대체로 친밀한 사이가 되면 상대방을 알만큼은 안다고 자부한다. 왜냐하면 서로 간 함께 공유한 시간들이 있고 쌓인 시간만큼 신뢰와 정이 가득하기에 만나면 편안하고 행복해진다. 무언가 불편함이 없는가를 살피게 되고 특히, 건강은 좋아 보이는지 걱정을 하게 된다. 뭐든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질문하고 대화하기에 오고 가는 교류의 정이 따뜻하다.

무엇을 살피고 물어도 상대에게 불편함이나 불쾌감은 없다. 거기에는 항상 선의라는 착하고 베풀고 도와주는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선의는 이렇듯 상대에게 비판받지도 질시받지도 않는다. 왜곡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세상에 수많은 인간사의 교류 속에서 순수한 선의가 있는 그대로 받아지고 왜곡현상이 없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모두가 모두에게.


왜, 선의는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굴곡될까? 이타적 마음의 발로들이 왜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까? 몇 가지 해답을 뒤로하고 우선 문제부터 제기해 보자. 이 시대를 가늠하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아마도 경제적 안정이 최고로 추앙받는 현상이 첫째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어떤 것으로의 빠른 도약과 성취, 경쟁에서 이기고 명예와 권력의 쟁취. 그런 것들이 뒤따를 것이다. 그 가운데는 사랑도, 연민도, 애절함도 가끔씩 있을 것이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시민적 삶에서 권력지향적 치열한 삶에까지의 사이 어딘가에 우리의 삶, 인생 이야기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로 시작한 숱한 사연들이 주변의 모든 삶들에 속한다.

최근 입적한 무산 큰스님은 자신의 일생을 그린 독백 같은 시에서 첫 화두를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 간다.”라고 적었다. 왜 천방지축이 앞의 말이고 허장성세는 뒷말이 됐을까?

어린 시절과 시 쓰고 살던 젊은 시절은 천방지축처럼 자유분방함이었고, 도도한 고승으로 외로운 수도를 수도 없이 반복한 고난의 면벽 수련은 자신의 권위를 상징했을지도 모른다는 말 같기도 하고, 다 살아보니 인생 별것 아니더라 삶의 끝에서까지 잡히지 않는 道를 향한 성불도 이름뿐일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말로도 들린다.

참새의 마음으로 대붕의 심상을 어찌 그릴 수 있겠나, 다만 참새 마음으로 헤아릴 뿐이다.
죽음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가치란, 인간의 가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그저 하잘 것 없는 개념들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의 목전에서는 겸허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렇게 거꾸로 부터 유추하면 인간의 심성은 성선설이 맞을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선은 선의로 상대방을 대한다. 실망을 거듭하고 체념에 더욱 체념을 더해도 인간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것이 선의이고 인간관계를 끌어가는 진정한 힘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사회를 지탱하는 역학 논리다. 이런 안타까움과 진정성이 표방하는 힘의 원천인 덕목은 “부족함”이다.

부족함이란 그래서 겸손으로 채우려 하는 속성으로 삶과 더불어 발전했기에, 부족한 것들을 채워가고, 인정하고, 인내한다.

결국 삶이란, 부족함을 드러내는 겸손이다. 살아있는 진실이 되고 기쁨도 되고 후회도 되고 슬픔도 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선의의 형이상학이 인간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부족함 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면서...

박태운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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