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운 발행인

가족이란 무엇보다 신뢰의 관계성과 연계성이 지속해야 실패하지 않는 가족사를 만들 수 있다. 부모의 권위가 품격으로, 자식의 권리가 도덕성으로 나타날 때 가난하더라도 쌍방은 이해와 사랑으로 서로를 견인한다.
돈의 왕국, 록펠러 가문 헌장엔 이런 말이 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후손은 한 푼도 못 받는다.” 탁월한 도덕성을 강조한 말이다. 새겨들어야 한다.


자연이 새롭게 생동하는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입양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들이 가정의 달답게 기념일이 즐비하다.
가정이란 무엇인가? 부부가 기본이 되어 자식들이 있고, 세월이 흘러 부모와 자식, 부부와 손자들이 함께하는 혈연적 기초의 최소 단위 사회구성인 가족이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꿈에서도 그려지는 어머니가 계신 곳이고,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사랑하는 자식이 존재하는 곳이다. 삶을 지켜주는 울타리이고 삶을 끊임없이 용솟음치게 하는 원천이고, 어려움을 끝까지 지탱해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모든 사회단위 중에서 가장 따뜻함이 많은 곳이고 잘못과 고난도 용서되고 녹여지는 사랑의 공간이다. 가정이란 그래서 거창한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다 소화되는 위대한 존재다.

이런 위대한 존재에 중대한 위협이 다가왔다. 가족 간의 이해가 엇갈리며 “돈”이라는 존재로 가치평가가 산정되면서 기어이 사랑과 이해가 넘쳐야 할 가정에 흙수저, 금수저가 나오고 3포니 5포니 하면서 젊은이들은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낳지 않겠다고 한다.
부모재력이 적은 집안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고민과 슬픔에 빠진 젊은이보다 정작 부모들이 더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한다. 대화형 설법으로 유튜브에서 인기 높은 법륜스님은 자식들과 부모들에게 가차 없이 쏘아붙인다.

“20세 넘었나?”“네, 넘었습니다.”“그런데 왜 붙잡고 있나” 20세 넘었으면 당연히 독립해야 하고 독립 못한 자식들 붙잡지 말고 간섭하지도 말라고 한다.
20세면 성인이니 자신의 삶은 자신이 알아서 개척해야지 자식은 부모에 기대지 말고 부모는 측은하게 자식을 여기지 말고 놓아두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마음이 어찌 그러한가, 자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자식 걱정과 혹여나 잘못될까 비위 맞추기에 연연한다. 그럴수록 자식은 독립심이 약해지고 부모에 미안한 마음이 상처가 되어 우울감이 쌓이고 스트레스는 병이 된다. 자식도 부모도 패배자다.

대강의 원인을 더듬어보면 비이성적 행동이 원인이다. 내 자식만은 잘돼야 한다는 교육열이 첫 번째이고, 자식 지상주의로 떠받들고 키운 몫도 하나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천륜이고 당연지사이지만 내 자식에 집착한 결과 직업학교는 절대 보낼 수 없고, 4년제 정규대학만이 자랑스러운 자식을 만든다는 잘못된 판단의 고질병이 대학으로 대학으로 향하게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대학교 졸업생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됐다. 비바람을 맞을지언정 양반은 뛰지 않는다는 조선시대 일화가 지금은 대학 나온 내가 중소기업은 갈 수 없다고 외친다. 쫓기듯 세월은 가고 부모도 직장에서 퇴직하는 60세 나이가 되면 평균수명 80세로 가정해 볼 때 20년의 노후가 기다린다.

이때부터가 부모와 자식의 괴리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부모는 20년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현실에 직면하게 되고 자식들도 상황인식을 하게 된다.
부모의 직장이 없어지고 더 이상 부모에 기댈 수 있는 자신감도 사라진다. 어떻게든 독립을 해야 하는데 능력 없는 부모까지 떠안아야 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는 퇴직금이라도 꼭 쥐고 있어야 하고 70세까지는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결심도 하고, 이젠 내 인생을 찾아야겠다고 자아실현을 위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도 싶어 한다.

서울대 모 교수의 SKY 대학 학생들에 대한 설문조사가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은 부모에게 바라는 바가 70%는 돈이었고, 80%는 63세에 부모가 돌아가시어 부모 퇴직금이 다 쓰이기 전에 자신의 소유가 되는 희망이었다. 발랄한 청년들의 재치라고 하기엔 부모 입장에서 볼 때 씁쓸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부모가 평생 일한 퇴직금이지만 커피숍이라도 차려서 돈 벌어 부모 봉양하면서 잘 살면 서로가 상생이 아니겠냐는 주장이다. 부모는 지내온 과거를 돌아볼 때 20년이란 세월이 얼마큼 긴 세월인지 가늠하는데 어렵지 않다.

늙어지면 아픈데도 많아지고 수입이 줄어들고 퇴직금은 곶감 꼬치 빼어먹듯 줄어들 것이고 60대는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일도 해야 한다.
지난 과거의 직위나 직책에 상관없이 자존심과 권위를 땅속에 묻고 새로운 현실인 허드렛일을 감당하며 퇴직금을 최대한 길게 지켜내야 한다.
홍철호 의원 발표에 의하면 부모대상 패륜범죄가 2012년 956건에서 2017년엔 1,962건으로 2배로 늘어났다고 하는데 그 유형이 존속상해, 협박, 감금, 유기, 학대 등 다양하고 폭행이 67.4%로 가장 높다고 한다. 매년 살해당하는 부모가 50명씩이나 된다는 건 상식 밖의 극심한 충격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가 인간 최고의 덕목이었던 선조들의 의식과 의례는 사라지고 있나! 지극정성으로 자식만 챙기는 문화가 오히려 독배가 되어 정상 사회를 기만하는 야만적 일탈행위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를 최후까지 지켜갈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속한 가정이 언제까지 유지될는지 걱정이 된다.
한창 효도관광을 즐기는 부모님들도 선의로 제공되는 자식들의 마음을 빨리 돈 달라는 신호로 오해되지 않는 세상이길 바란다.

부모는 자식이 사회에 튼튼히 뿌리내려 떳떳하게 살기를 바라고, 자식은 60세 초반에 세상 떠나는 부모를 원해서는 안 된다.
돈으로 가늠되는 부모와 자식관계는 점점 현실로 확산되겠지만 부모 돈은 많든 적든 부모의 소유다.
퇴직 후 20년을 부양할 자식들이 얼마나 있나, 목돈은 뺏기기 쉬워 매달 생활비로 나오는 연금형으로 고정시켜 바꿀 수 없게 만드는 부모의 심정도 자식들은 이해해야 한다.
평균수명의 증가가 축복이 돼야지 인생 리스크가 된다면 인간의 삶이 고통이요 허망함이다. 부모 돈은 누구 돈인가? 부모의 마지막 삶의 자아실현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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