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녀
 

주차장에는 많은 선들이 그려져 있다
턱도 없고
늪도 아닌, 선은 글자가 아니고
울타리가 아닌데
그것을 아무도 넘지 않는다

선은 곧고, 기도하지 않아도
길다, 선에는 인생이 빠져 있지만
선을 따라 걸으면 난간 위를 걷는 기분이야
선 위에서 우리는 떨고 대결한다
왼쪽과 오른쪽이 되어 줄다리기를 한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아서
선은 공평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선이 자란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돌이킬 수 없게 우리에게
선이 생겼어
적당한 거리로 우리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 있다
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아이들이 선과 선 사이를 뛰어다닌다
건반들처럼 선들이 차가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프로필]
김지녀 : 경기 양평,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 박사 수료, 시집[시소의 감정]외 다수

[시감상]
살다 보면 여러 개의 선이 생긴다. 반드시 지켜야 할 선, 대충 넘어가도 좋을 선, 애초에 없어야 할 선,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선 하나 그었을 뿐인데 선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아니 쉽다.  그 선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線은 스스로 지킬 때 善이 된다.                  
[글/ 김이율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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