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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호랑이도 귀가 있다 <69>

문틈으로 모녀의 대화를 듣고 난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뺑덕이가 나처럼 미래를 볼 수 있다니. 몸 어딘가에 혹이 달려 있기에 뚱뚱했던 것입니다. 겉에는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으니 배나 가슴에 숨겨져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몸을 그려보다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딸 같은 아이의 알몸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젠장. 하필 뺑덕이란 말이냐?’
몸 어딘가에 무거운 혹을 붙이고 염포교에게 들킬까 봐 떨고 있을 것을 상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나, 풍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뺑덕어멈이 어느 날부터 염포교에게 내가 미래를 본다는 사실을 감추고 나를 감싼 이유를 알았습니다. 나를 함부로 했다가는 자기 딸의 비밀이 탄로 날 우려가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 쉿.”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벽 뒤로 숨겼습니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뺑덕어멈이 고개를 쑤욱 내밀었습니다. 평소와 달리 겁에 질린 표정이었습니다. 휘휘 둘러보더니 문을 닫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무거웠습니다. 기생 출신 뺑덕어멈이 껄떡댈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제 딸의 목숨이 위험하게 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니 불쌍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양동이 그리고 뺑덕이가 추가되었습니다. 또 누가 있을까요?

미래를 보는 것이 조선 조정에서 역모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저승세계와 연결되었을 줄 어찌 알았을까요. 참담합니다. 턱에 붙은 혹이 오늘따라 미워집니다. 내년이면 일본군이 조선으로 쳐들어와 많은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용케 내가 살아도 염라대왕의 눈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나이 오십에 중도 아닌데 숫총각으로 그냥 죽는 것은 서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칼을 가는 노인이 있습니다. 이 분은 열 살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칼갈이를 한 지 오십 년이 넘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서 칼을 갈았습니다. 솜씨가 좋아서 먼 곳에서도 칼을 망태에 담아 와 갈곤 했습니다. 허리를 구부러지고 눈이 침침해질 정도로 나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가난은 여전했지만, 늘 웃음이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잘했습니다. 아마도 칼갈이가 아니었더라면 나처럼 재담꾼이 되었을 것입니다.

“혹부리, 안 좋은 일 있나? 얼굴이 먹구름이네.”
칼을 빌려다가 혹을 떼려고 마음먹었던 나는 뜨끔했습니다. 원수 같은 혹을 떼다가 피를 많이 흘려 죽든가 용하게 살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려 했던 것입니다.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디서 써먹게.”
칼갈이는 숫돌에 칼을 갈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칼을 갈러 온 여자가 동네 아낙네들과 함께 뒷동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고 한다. 한참 수다를 떨며 나물을 캐는데 몇 마리의 고양이가 보였다고 합니다. 무심코 한 아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놈 얄밉게도 생겼네. 톡 때려죽이고 싶네.”
그러자 다른 아낙들이 킬킬 웃을 때 한 여자만 정색하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난 귀엽기만 하군.”
이때였습니다. 건너편 산에서 어흥! 하고 호랑이가 울었습니다. 그제야 고양이가 호랑이 새끼라는 것을 깨닫고는 혼비백산해서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집으로 도망쳐 왔다고 합니다.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자 간신히 나와보니 귀엽다고 말한 아낙의 바구니와 호미가 대문 앞에 나란히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반대로 때려죽이고 싶다는 아낙의 대문 앞에는 갈가리 찢긴 바구니와 부러진 호미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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