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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옥구슬을 돌려준 망령 <67>

토정 선생의 말대로 큰길로 나가자 바람이 휭 불며 몸이 움직였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걸포의 반대편에 있는 삭시었습니다. 소름이 오싹 끼치는 공간이동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졌습니다. 누구나 다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몇백 년 뒤의 후손들도 4자를 死(사)와 연결해서 기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토정선생을 만나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때 저벅저벅 앞에서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을 크게 바라보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관복을 입은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토정 선생이 말한 최대감이었습니다. 술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나는 허리 굽혀 절하고 말했습니다.
“대감님, 저는 김포의 재담꾼 풍문이라고 합니다. 어디를 갔다 오십니까?”
대감께서는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자식들이 술을 많이 권해서 매우 취했소. 우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 내 잘 먹고 갔다고 얘기 좀 전해주시오. 그리고…… ”
대감이 품 안에서 종이에 싼 것을 건네주었습니다. 내가 고개 숙여 받아서 얼굴을 드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토정 선생 말대로 혼령이 분명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훈민정음을 만든 영의정 최항 대감님의 후손이 사는 집입니다. 그분도 큰 벼슬을 했음에도 청렴해서 집도 조촐했습니다. 대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제사를 마치고 철상하려는 중이었습니다.

의아해하는 주인 최진사에게 대감의 혼령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는 종이에 싼 물건을 건네주었습니다. 내 얘기를 들은 가족은 다시 제사상 앞에 엎드려 곡을 하고는, 종이에 싼 물건을 펼쳤습니다.
내가 궁금해서 바라보니 빛이 나는 세 개의 구슬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대감의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집에서 대대로 며느리에게 전해 내려온 비녀에 꽂혀 있던 구슬입니다. 대감께서 돌아가셨을 때 경제 형편이 안 되어 비녀에서 뽑아 반함주로 입에 넣었습니다.”
반함주란 돌아가신 분이 저승에 갔을 때 쓰라고 입에 넣어주는 구슬을 말합니다.
“곧 딸의 혼사가 있는데 대감께서 가난한 집 사정을 알고 혼사 비용으로 보내준 것 같소.”
그 비녀를 가지고 나와 구슬 뽑은 자리에 맞추어 보니 꽉 들어맞았습니다. 다시 한번 통곡을 하는 것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곡이 끝나자 주인 최진사는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돈을 주려고 했습니다. 나는 거절하고는 토정 선생이 말한 대로 부탁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 집의 노비가 속량해서 백마도(白馬島)에서 말 기르는 업을 하고 있으니 그곳에 걸포에 있는 돌미륵을 옮겨 달라는 것입니다. 큰일이 아니기에 기꺼이 그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한참을 걸어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나는 이부자리를 펴놓기가 무섭게 잠이 들었습니다. 집주인이 깨었을 때는 해가 중천에 더 있었습니다. 사람이 찾아왔다고 해서 나가 보니 어제 찾아갔던 최진사댁 하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앞세우고 한참을 걸어 백마도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백마도는 나라에서 말을 기르게 하는 작은 섬이었습니다. 원래는 작은 섬이었는데 위에서 모래가 퇴적되어 제법 큰 섬이 되었고 잡초가 우거지자 이곳에서 말을 기르게 했던 것입니다.

쪽배를 타고 건너는데 말들이 히잉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십여 마리의 말에게 풀을 뜯기던 거구의 목부가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얼굴이 따가운 햇볕에 탔는지 시커멓습니다. 하인의 말에 의하면 목부의 이름은 ‘가문돌’이었습니다. 시커먼 흑석(黑石)인 검은돌을 나오는 발음대로 부르다 보니 가문돌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인을 보며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며 뭔가 말했는데 내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벙어리였던 것입니다. 하인도 작은 키가 아니었는데 목부 가문돌은 머리 하나가 더 크고 건장했습니다. 시커먼 돌의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 사내였습니다. 그는 귀는 먹지 않았는지 하인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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