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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32>

미래를 점치는 도깨비 1<33>

비가 그치자 나는 주막을 나왔습니다. 털보를 비롯한 장사치들은 도깨비를 만났다는 사람을 보면 알려주겠다고 하고 내가 사는 곳을 물었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은 모양입니다. 나는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습니다.
"아버지! 도깨비는 도대체 어디 있나요? 제발 만나게 도와주세요."
마송장에 도깨비가 있다는 것이 소문이 아버지가 아주 옛날 퍼뜨린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문수산에서 도깨비를 만나 혹을 뗐다는 말도 거짓일지 몰라.'
나는 혹 뗀 이야기 자체에 의혹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마포에서 김포로 건너온 것 아닙니까? 아버지는 종로와 청계천을 누비는 최고의 전기수였습니다. 나관중이 지은‘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몽땅 외워 그걸로 이름을 날렸다는데 저는 이게 뭡니까? 커다란 혹이 턱에 달라붙어 흉측한 형상이니 아무리 입담이 좋아도 다 허사입니다. 재수없다고 침 탁탁 뱉고 돌아설 것입니다. 그래도 여기 김포분들은 본시 사람들이 좋아 그냥 재담에 빠진 것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눈을 감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혹에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는 허풍을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지만요.

"문수산으로 갈까? 가서 강령포에 내리는 뱃사람들에게 재담으로 푼돈이나 얻어보고."
나는 문수산으로 가서 다시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칠 대로 지친 몸이라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조강포로 가는 우차를 보았습니다. 양천까지 물품을 실어주고 돌아가는 모양인데 텅 비어 있으니 타고 갈 수 있습니다.
"혹부리 영감님! 태워 드리긴 하겠는데요. 재담 하나 들려주셔야 해요."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마차꾼 총각의 말에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올라탔습니다. 우차꾼 네 명과 함께 조강포로 향하며 재담을 시작했습니다.

"에, 여우재 너머 서당이 있었는데 훈장이 학식이 높아 학생이 많았다 하오."
내가 이렇게 시작하자 총각이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같은 무지렁이 상민하고는 인연이 없는 곳이군요."
다른 우차꾼들도 모두 하하 웃었습니다. 나는 몇백 년 뒤에는 학교라는 곳에서 차별 없이 공부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아니, 양반 상민이라는 구별이 없다는 말도 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관료가 민중은 개돼지 같다고 말했다가 파면당하고 자신이 개돼지 신세가 되었다는 말도 입이 간지러웠지만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서당이 있었는데 문동이라는 아이가 공부하러 왔습니다. 훈장이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험한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누구보다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옷차림새가 초라했지만 아이는 상당히 명석해서 훈장이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헤아릴 정도였습니다. 서당 공부가 끝나면 문동이는 같이 어울리지 않고 곧장 가버렸습니다. 아이들은 문동이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자기가 사는 곳이 너무 멀어서 그런가?"
"아니야, 집에 가서 일하는 것 도우려 하는 걸 거야."
겉보기에도 살림살이가 매우 어려워 보이는 문동이었습니다. 이렇게 뒷담화를 하는데 별명이 까불이인 친구가 끼어들었습니다.
"애들아, 너 문동이가 가마 타고 다니는 것 알아? 매일 왔다 갔다."
모두 놀랐습니다. 가마는 돈 많은 어른이나 타고 다니는 것입니다. 앞뒤로 힘센 어른 두 사람이 들고 가야 해 품삯이 많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것도 매일 탄다니 놀랄 수밖에요.
 

최영찬 
소설가

최영찬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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