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감투 (31)
 

주막의 손님들은 내 재담에 홀딱 빠진 모양입니다. 말이 끝나자 일제히 손뼉을 쳤습니다. 밖을 보니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습니다. 털보 장사치가 다시 탁배기를 건네주었습니다.
“대단하시오. 그런데 이런 빗속에 어딜 가시는 중이었오?”
마송장 도깨비 감투 이야기를 하자 손님 중에 장사치들이 껄껄 웃었습니다. 털보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며칠 전에 마송장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마송장에 신출귀몰한 도둑이 가게를 털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도깨비짓이라고 두려워하는데 염포교가 며칠 동안 잠복해 붙잡아 통진현으로 끌고 갔다고 했습니다. 염포교, 즉 염라대왕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습니다.

“그럼, 도깨비 감투 이야기는 어찌 된 것이요?”
내가 되묻자 털보가 말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서울에서 전기수를 했던 재담꾼이 마송장에서 했던 이야기라오. 으흠.”
하며 털보가 자신이 들은 도깨비 감투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가난한 선비가 시장에 나갔습니다. 돈이 없어 물건을 사지 못하고 기웃기웃거리다가 겨우 꽁치 한 마리를 사서 지푸라기에 꿰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시커먼 것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털보가 재담꾼 흉내를 내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선비가 발견한 것은 감투였습니다. 감투는 양반 선비가 머리에 쓰는 것인데 말총으로 만든 고가품이라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집어 썼습니다.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딱 머리에 들어맞자 신이 나서 얼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에게 자랑하려는 것이지요. 여보! 여보! 하며 부르는데 부엌에 있던 아내가 털썩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새파랗게 얼굴이 변해서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며 놀란 선비가 감투를 벗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다그칩니다.
“봤지? 당신 받지 꽁치가 허공에 떠 있는 거?”
선비는 영문을 몰라 하며 감투를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씌워주는 순간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제야 그 감투가 도깨비 감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털보는 손짓 발짓을 하며 자신이 들은 재담을 늘어놓았지만, 제게는 어설프게 보였습니다. 다음 말이 기억이 나지 않는지 더듬거리는 것을 보고 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같아 제가 다음 말을 잇겠습니다.”
마송장에 갔던 장사치들은 알고 있겠지만 다른 손님들은 처음 듣는 재담인지라 귀를 쫑긋하고 제 입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선비는 도깨비 감투를 손에 들고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 시장에 갔는데 과줄을 보자 얼른 집어서 입에 넣었습니다.

앞에 있었던 것이 사라지자 장사치가 어리둥절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킥킥 웃었습니다. 흑심이 생긴 그는 그 뒤로 시장의 물건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감쪽같이 물건이 사라지자 물건의 주인은 놀라기도 했고 성이 났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일 년이 지나자 감투가 헤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선비가 바느질로 기웠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 가서 도깨비 감투를 쓰고 장사꾼의 돈을 훔쳤는데 허공에 헝겊이 보이자 사람들이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선비가 도깨비 감투를 쓰고 도둑질을 한 것이 드러나 몰매를 맞고 동네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습니다. 내가 눈물을 글썽거리자 털보가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래전에 그 재담을 들려주신 어른이 저희 선친이십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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