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김포불교<2>

백운경한(김포) 함허득통(강화) 설잠 김시습(김포 조강)

정현채
사단법인
지역문화전략
연구원장

지공(指空)스님이 10만 8천리를 걸어서 고려에 왔다. 우리나라 전역을 무궁화 3천리 금수강산이라 하는데 10만 8천리는 어느 정도일까? 평지는 하루에 30킬로미터 정도를 걸을 수 있다. 문수산 정도의 산을 만나면 반으로 줄어든다. 걷기 중에서 행선(行禪)은 오래 걷고 많이 걷는 것은 아니다. 산을 만나면 산을 넘고 강을 만나면 강을 건넌다. 때로는 산과 강을 돌고 돌아서 가다보면 스스로 변화가 일어나 자연(自然)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기도 한다.

"대승의 근기가 있어 10만 8천여리를 떠나 오셨도다/ 죽음도 돌아보지 않고 특별히 서역에서 오셨나니/ 구름과 준령을 넘으며 산을 헤치고 물을 건너신도다/ 바람 먹는 노숙과 관산을 기탄치 않으셨나니/ 온갖 고생을 다 겪으시고 비로소 운남에 이르신도다/ 다음에는 대원에 이르고 고려에 이르셨으니/ 명산들을 편력하고 근기를 보아 가르침을 펴신도다"
※노숙(집 밖에서 자는 것), 관산(산을 지칭), 기탄(어렵게 여겨 꺼림) 대원(원나라)

백운경한이 신묘년에 지공선사께 올린 게송의 일부다. 서역에서 고려까지 오는 여정과 만나는 사람들의 근기를 살펴서 가르침을 주었다는 이야기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지공은 개개인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맞는 가르침을 주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맞춤형 교육과 가깝다. 걷기는 몸을 열어주며 비울 것도 채울 것도 없다는 것을 체득하게 해준다. 지공은 먼 길을 걷고 걸어서 고려 땅에 도착한다.

백운경한(1287∽1374)은 김포의 시골마을 고산암(金浦 浦望山 孤山庵)에서 지공스님을 그리며 찬(讚)을 썼다. 지공스님의 영정을 걸어놓고 스님을 기리는 글을 쓰는 그 마음이 지극하다. 백운화상어록에 그 이야기들이 있다. 백운화상어록은 백운경한스님의 말씀을 제자가 기록해 놓은 책이다. 노트북도 없고 지필묵도 넉넉지 않았던 시대다. 묘덕의 시주로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이 되었고 백운화상어록은 제자 석찬선사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덕분에 백운스님이 김포에서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스님은 개경에서 조강을 건너 김포로 왔을 것이다. 당시 고려의 수도가 개경이었으니 한적한 곳에서 수행에 전념하고 글을 쓰기에 김포는 고즈넉한 시골이었다. 백운경한의 스승인 지공(指空 1300∽1363)으로부터 나옹, 무학대사를 이어 강화도 정수사를 중수하고 그곳에 부도가 있는 함허득통으로 선맥이 이어진다. “세상 사람들이 응용하는 것은 허공과 같이 넓고 깊고 그윽한 적멸의 도(道)가 아니라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익힌 지식 속에 오르내리는 계산에 불과하다 그러나 참된 도는 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은 道를 싣는 도구이며 널리 교화하는 방편”이라고 말한 함허득통(1376∽1433)으로부터 道는 다시 “홍준스님을 거쳐서 설잠”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월간 海印).

설잠스님은 김시습의 법명이다. 설잠의 책에 김포 조강이 나온다.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다. 금오신화의 저자는 설잠스님이다. 설잠 김시습(雪岑 金時習 1435-1493)은 매월당(梅月堂)이라 불린다. 김시습은 승려로서 유학자로 또는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설잠은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했으며 매월당집(梅月堂集)에 나옹스님과 지공스님을 존경한 것으로 나온다.
지공과 백운경한의 인연을 김포를 중심으로 살펴보니 설잠 김시습까지 이어진다. 설잠이 김포에 살았는지 전해지는 이야기나 기록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금오신화에 나와 있는 용궁부연록에 등장하는 벽란신, 낙하신, 조강신은 이 지역을 알지 못하고는 쓸 수 없는 글이다. 설잠은 이곳을 몇 번이고 오고 갔을 것이다. 애기봉에서 조강을 보면서 좌측과 우측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용궁부연록을 이해할 수 있다.

용궁부연록은 개경 용추에 살고 있는 용왕이 공주의 별궁을 짓고 고려 서생 한생을 초대한다.  한생은 높은 학식으로 상량문을 써주었고 용왕은 그 고마움으로 조강신과 벽란신, 낙하신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는 이야기다. 설잠스님은 말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무량사에서 살다가 59세에 입적한다. 천년고찰 무량사에는 설잠의 영정이 있으며 강릉에는 김시습의 기념관이 있다. 김포에도 조강 주변에 있는 폐사지를 복원하여 지공. 백운경한, 설잠스님의 자취를 남겨보는 것도 김포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줄 것이며 미래의 문화자산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