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묘자리<25>

재담하러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자주 만나는 사람이 지관(풍수쟁이)입니다. 패철 즉 나침반 하나 들고 방방곡곡 다니며 살기 좋은 곳과 죽어서 묻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직업이지요. 사실 이곳 김포는 높은 산이 없어서 명당이 없을 것 같은데도 월곶, 문수산 주위를 맴돌곤 하지요. 그때마다 저는 도깨비를 못 보았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하긴 도깨비가 밤에 돌아다니지 낮에 활동하는 지관 눈에 띌 리가 없지요. 소득이 있다면 이 사람들이 전해 준 민담입니다. 오늘은 조강포에서 배를 기다리는 승객들 앞에서 풍수에 얽힌 이야기를 늘어놓기로 했습니다. 또 옛날 옛날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살짝 바꿨습니다. 원래는 어느 사람이 명당을 써서 그 후손이 임금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말했다가는 염라대왕 앞에 끌려갑니다. 풍문의 혹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옛날 옛적에 효자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지관을 부를 수 없었던 효자는 가매장하고 산소자리를 찾아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밤이 되었습니다. 춥고 배고팠지만, 날이 샐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앞이 훤해지면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숲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어 보니 놀랍게도 도깨비가 아니겠습니까?”
혹시나 승객들 사이에 도깨비가 숨어있지 않나 살펴보았지만 염포교와 눈이 딱 마주쳤을 뿐입니다.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입이 얼어붙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역적이 되니까요. 
“도깨비는 왕이 죽으면 쓸 묘자리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곳에 인간이 무덤을 쓰면 임금님 바로 밑의 영의정이 될 수 있지만, 금으로 만든 관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깨비들은 이곳에 묻은 달걀이 열흘 후에 왔을 때 부화가 되면 명당이 틀림없다고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효자는 이 자리에 아버지를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곰곰이 생각하다가 달걀 하나와 보릿대를 구해 뭔가 만들어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도깨비가 묘자리로 찍어놓은 곳에 내려놓고 또 뭔가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도깨비가 돌아오겠다고 한 시각에 맞춰 산으로 가서 숨어 있었습니다. 또다시 노랫소리와 함께 여러 명의 도깨비가 나타나서 파묻은 달걀을 꺼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달걀이 부화가 안 되었으니까요. 그리고는 명당자리에 금관이 놓인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어떤 인간이 우리 도깨비 임금님 묘를 훔쳤다!”
“괜찮아, 여긴 명당이 아니야. 달걀이 부화하지 않았잖아.”
효자가 바꿔치기한 삶은 달걀에 보릿대로 엮어 누런 모습의 관을 금관으로 착각한 도깨비들은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가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깨비가 찍어둔 명당에 아버지의 시신을 모신 효자는 후손이 영의정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재담을 끝내자 승객들이 재미있다고 하면서 유엽전을 항아리에 던지고 배에 올라탔습니다. 항아리에서 돈을 꺼내는데 염포교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습니다.

“여보게 풍문. 잘도 꾸며대는군. 그 명당자리가 영의정이 나오는 곳이라고? 왕이 아니고?”
나는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염포교가 육모방망이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네가 앞날을 내다본다는 것을 알고 있어. 순순히 말하는 것이 좋을 거야.”
앞날을 아는 것은 무당이나 장님 판수지 내가 아니라고. 속으로만 중얼거렸지요.
“내년에 왜군이 쳐들어온다고 말했다며? 그래서 피난을 가라고 하지 않았어?”
“그 말은 조헌 선생에게서 들은 말이오. 따지려면 그분에게 가서 하시오.”
난리가 난다는 말은 이미 세상에서 떠도니 염포교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째려보더군요.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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