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

                   김복희

 

병원에서 진료 후 사형선고를 받고 나오는데 하늘이 노랗고 눈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흥국사 약사여래불, 밤하늘에 별은 반짝이는데 나는 왜 형벌을 받아야하느냐 따져 묻고 싶었지만 지은 업보 탓이라고 호통 치실까 두려워 그냥 돌아와서 몇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후벼 파고 있을 때 양쪽 방에서 시어머니와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굉음으로 요동을 친다 가족이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분노는 끓어오르고 꿈을 놓고 떠나야하는 신세가 서러워 매일 밤 사경을 헤매다가 보름 후에 병원에 가서 다시 CT를 찍고 나니 폐암이 아니란다 순간 의사의 따귀를 후려칠까 손을 들어 올리다가 살 수 있다는 안도감에 감사의 마음으로 손을 내렸다

 

[프로필]
김복희
 : 서울 출생, 문학사계 신인상, 25회 경기도 문학상. 시집[쑥부쟁이 꽃]외 다수

[시감상]
시인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보름의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변을 정리? 관계를 정리? 버킷리스트를 작성? 혹, 우리에게 그런 오진이 생긴다면 과연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 친구, 못 이룬 꿈의 조각들 모든 것에서 아쉽고 좀 더 잘 할 것을 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만약 매일 오진을 겪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못 할 것이 없지 않을까 싶다.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포근하고 좀 더 적극적인, 세상을 보는 눈이 매우 달라질 것이다. 봄이 성큼 이다. 오늘 아침 선고를 받고, 내일 아침 오진이라는 것에 행복해 하는 봄이 되면 어떨까?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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