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2

▲ 최영찬 소설가
방사를 금하는 것은 물론이고 목욕재계하며 심신을 깨끗이 하고 선조의 영혼을 대하는 것이 제사가 아닙니까? 젊은 주인이 방금까지 정성껏 지내지 않았더라면 달려나와 불호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한참을 서로 애무하던 부부는 이불에서 나와 다시 옷을 입고는 서럽게 곡(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이리하더니 젊은 주인은 마치 살아 있는 부모를 보내듯이 조심을 다하며 마루에서 내려와 대문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부모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이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판서는 열린 문을 닫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예조판서를 지내면서 제사를 자주 보았지만, 이런 예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미 돌아간 부모에게 마치 살아계신 것처럼 하는 효성은 기특하지만, 이불을 펴놓고 젊은 부부가 한 짓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방 밖에서 작은 소리가 들립니다.  

“어르신, 주무십니까? 아니시면 음식 좀 드시지요.”
젊은 주인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게 했습니다. 한 상 가득한 것이 야참으로 충분했습니다. 판서는 맛깔스런 음식보다 제사가 궁금했습니다.

“고맙소. 마침 출출했는데. 미안하오만 내가 문틈으로 제사 지내는 것을 보았소.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감동적이나 그다음은……까닭이 뭐요?”

젊은 주인이 빙그레 웃습니다.
“어르신, 보셨군요. 저의 집안은 김포 일대에서 알아주는 부농이고 부모님은 후덕하신 분이었습니다. 혼례날을 잡아놓고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외아들인 그가 열두 살 때 혼인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역병으로 부모님을 잃었다고 합니다. 산소 옆에 초막을 짓고 삼 년 상을 치른 뒤에 혼인한지 또 삼 년이 되는 기일이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의 혼사를 보지 못하고 급작스레 돌아간 부모님입니다. 아들이 그것을 가슴 아파하며 며느리와 함께 알콩달콩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판서가 무릎을 치고 말했습니다.

“내 수십 년 동안 효도 잘하는 이를 찾았는데 오늘 비로소 보게 되는구려.”
판서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젊은 주인을 칭찬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제사를 드리는 젊은 부부의 참됨을 생생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효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지요.

재담을 마치고 혹을 툭툭 쳤습니다. 이야기는 제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혹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지요. 호롱불 아래에서 빙 둘러앉은 사람들은 감동한 모양입니다. 저 역시 역병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코를 훌쩍거렸습니다. 누군가 손수건을 건네주어 코를 핑하고 풀고는 바라보니 염포교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재담에 열중하느라 그가 몰래 들어온 것을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감동적이네. 나도 눈물이 다 나네. 나도 스무 해 전에 부모님을 역병으로 여위었거든.”
염라대왕의 눈가가 시뻘게진 것을 보니 모질기로 이름난 염포교도 역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손수건에 대고 코를 풀고는 말했습니다.
“근데 말이야. 자네 어제 주막에서 장차 이 땅에서 여왕이 나올 것이라고 했나?”

순식간에 돌변한 염포교의 눈을 보고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주막집의 여주인인 뺑덕어미가 내게 던진 말이 함정일 줄이야. 그녀는 앞으로 조선 왕조가 이어지는 동안에 여자가 임금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자 나는 박씨 성의 여왕이 나올 것이라고 무심코 말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염포교는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데는 어디야? 트림, 트림을 푼다는 것은 무엇이야?”
아차차, 술김에 꿈에서 본대로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까지 내뱉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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