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이동훈

공원 물웅덩이가 불그레하다
단풍잎 몇 장 사이 잠자리
아침 서리에 날개 젖고 맵찬 바람에 날개 얼어
장대 끝에 시름 깊던 잠자리다
알 낳던 자리가 자신의 무덤 자리인 것을 아는지
물에 대었다 뜨기를 몇 차례
점점 무거워지는 날개로
하늘 공중에 제 이름자를 수결하고 날개를 편 채로
날개를 잊고 물에 든 것이다
공중 화장실 입구에 줄이 처졌다
어느 노숙인의 잠자리
제 이름자 한 줄 남기지 못한
가진 것도 날리고, 없는 것도 곤두치는 쓸쓸한 이력인 양
신문지 낱장이 분분하다
축축한 몸 하나 덮지 못한 것이 단풍잎 따라 물웅덩이로 가
날개를 적셔 우는 것이다


[프로필]
이동훈 : 경북 봉화. 우리시 신인상, 현직 고교 교사, 시집[엉덩이에 대한 명상]
[시감상]
서늘한 듯하더니 새벽이면 못내 차가운 날씨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오르던 잠
자리, 단풍잎 사이 날개가 멈춰있다. 탄생하고 소멸하는 생명에 대한 자연의 섭리지만 괜스레 잠자리
의 무덤 자리를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구세군의 종소리가 도시에 하나둘 들릴 것이고 년
말은 곧 다가올 것이다. 어느 노숙인의 잠자리엔 박스가 한 겹 더 날개를 데울 것이며 신문지 몇 장이
한기에 떠는 그의 몸을 가려 줄지도 모른다. 추워질수록 주변을 되돌아보자. 내 작은 성의가 나보다 더
추운 그들에게 잠시의 햇살이 될지도 모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내 것을 네게 주는 일이다. 크기와 부피
가 문제가 아닌 마음이 겨냥하는 마음의 과녁은 따듯한 손길만큼 훈훈할 것이다. 내년 여름 공중을 자
유롭게 비상하는 우리의 잠자리를 기다려본다.[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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