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찬 소설가
한 가지 일에 열중하면 언젠가는 성취합니다. 저 역시 이 혹을 떼고 예쁜 여자와 혼인을 하려는 의지 하나로 살고 있습니다. 어젯밤 꿈에 몇백 년 후 김포의 커다란 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뱃속에 있는 커다란 혹을 칼로 툭 떼어내더군요. 배를 가르고 그 안의 혹을 떼 낼 정도니 제 얼굴에 붙은 혹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제가 땅을 딛고 사는 조선 중기에 혹을 떼어 낸다는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조강포에 사는 젊은 혹부리가 고민 끝에 백정에게 혹 떼는 수술을 부탁했습니다. 돼지 멱도 따는데 그깟 혹을 못 떼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떼긴 뗐는데 과다출혈로 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겁먹은 백정이 서울로 도망쳤지만 염포교에게 붙잡혀 현장검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무섭게 닦달하는지 저는 오금이 저렸습니다. 젊은 친구가 성급하게 혹을 떼려다 자기 목숨 잃고 백정까지 살인자 만든 것입니다. 이때 토정 선생의 말씀이 귀에 들려왔습니다.
‘언젠가 혹을 뗄 것이다. 그러니 절대 꿈속에서 미래를 오고 간다는 말 하지 마라.’
꿈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어떻게 위험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묻자 토정선생은 세월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습니다. 이렇게 토정선생을 회상하며 감암포에 재담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정자나무 밑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쪽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명궁이다, 명궁이야!”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 보니 젊은 궁사가 버드나무를 향해 활을 쏘자 자그만 잎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구경꾼들이 또 탄성을 지릅니다. 궁사가 활을 치켜들고 자랑을 하자 맨 앞에 서 있던 기름장사 노인이 빙긋 웃었습니다. 그걸 본 궁사가 화를 벌컥 냅니다.
“여보슈! 노인장. 왜 날 비웃는 것이요? 당신도 활을 나만큼 쏠 수 있다는 것이오?”
그러나 노인은 웃으면서 대꾸했습니다.
“젊은이. 나는 활을 전혀 잡아 본 적이 없소. 하지만 육십 년 동안 이 장사를 하다 보니 내게도 묘한 재주가 생깁디다.한번 보겠소?”
노인은 구멍 뚫린 엽전을 하나 꺼내더니 왼손에 쥐고 그 밑에 빈 병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는 기름이 가득 든 병을 높이 쳐들었습니다. 주르르 허공에서 보일락 말락 하게 실 같은 기름이 떨어지더니 엽전을 통과해서 빈 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구경꾼들이 숨을 죽이고 저 역시 잔뜩 긴장하며 보았습니다. 마침내 빈 병은 기름으로 찼습니다.
“보셨지요? 몇십 년 이 장사에 열중하니 기름을 다루는 것에 익숙해졌소. 궁사가 지금 많이 쏘지 않았기에 백발백중이 지만 시간이 지나면 팔 힘이 떨어지고 눈이 어른거려 마침내 빗나가는 것이 있을 것이오. 그러면 명궁이라는 칭송도 사라지고 마는 게요.”
노인의 말에 궁사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활을 잘 쏘는 것은 기능일 뿐인데 남에게 자랑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겠지요. 명궁과 기름장수의 대결이 끝나자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그 뒤로 기름장수 노인은 보지 못했지만, 궁사는 가끔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건방진 모습은 사라져 겸손하게 행동했습니다. 저도 재주를 뽐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되니 미래 세계를 봤다고 뽐내려는 충동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봐, 풍문. 네가 꿈에서 본 것을 나불거린 것을 다 알고 있어. 순순히 불어!”
느닷없이 찾아온 염포교가 육모방망이를 들어 보이며 위협을 했습니다. 어떻게 제 비밀을 입 밖에 냈겠습니까. 넘겨짚는 것이지요. 저는 겁에 질린 척 공손히 말했습니다.
“나으리, 저는 며칠 전 나으리께서 역적을 잡아 벼슬길에 오르는 꿈만 꾸었는데요.”
순 거짓말이었지만 염라대왕도 아부에 는 약한 모양입니다. 히히 웃고는 풀어주더군요.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