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청명하던 시월의 어느 날,
 고즈넉한 주택가 단아한 집안에서 길원옥 할머니가 우리를 맞아 주셨다. 할머니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는 거실에 들어서니 마음마저 숙연해졌다. 푸근히 웃어주시는 할머니의 모습 뒤로 베어나는 아픔, 그리고 당당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이셨다. 13살 그 어린 나이에!

 할머니는 일본의 침략과 한국전쟁의 상처를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70여년의 세월 지난 지금도 제대로 된 사과 받기를 염원하며 살아가고 계신다. 일본군 위안부로 북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망향의 아픔마저 안고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침략과 전쟁의 가장 아픈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이었다. 할머니는 “13살에 고향 평양에서 돈 벌고 기술을 가르쳐 준다기에 일본군을 따라나섰다가 몹쓸 성병에 걸려 자궁까지 들어낸 쓰라린 경험”을 가진 아픈 우리의 역사다. 그 할머니는 오늘도 말씀하신다. "(일본으로부터) 한마디 사과의 말도 없으니 여러분 힘을 빌려 죽기 전 소원을 풀어 볼까 하고 몸이 아픈데도 살아가고 있다. (울먹이며) 많이 도와 달라"고 하신다.

 또한 최근에 촬영한 영상 ‘평화가 춤춘다. 통일이다’에서 “감악소 갇힌 아버지를 빼낼 수 있는 돈 10원이 있어야 한다고, 철부지 어린 나, 돈을 벌어서 아버지 나오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며 내 앞에 나타난 낯선 사람을 따라 나섰습니다. 아버지 벌금 10원을 벌고 싶어서,.......”라고 길원옥 할머니는 위안부가 되어야 했던 그 날을 회상한다.

 (사)김포여성의전화는 여성인권단체다. 한반도에서 자행된 일본의 침탈로 부터 뼈아픈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 냈으며, 전쟁과 분단으로 고향마저 잃어버린 길원옥 할머니를 우리 역사 속 가장 아픈 여성 피해자로 기억하려 한다. 이제 그 절절한 망향과 고통의 한(恨)을 지고지순한 관용, 용기, 자비, 사랑, 평화의 상징으로 승화하여 우리 삶 속에 의미를 되새겨 보려한다.

 국태민안의 소원을 비는 매향으로 시작하여 구한말에는 구국의병의 정신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전쟁, 그리고 분단과 이산의 시대인 근 현대에 있어서는 평화, 통일, 생명존중의 상징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매향제』를 김포지역에서는 여러 해 동안 명맥을 이어 지내 왔다. 매향의 정신은 UN, 유네스코의 창립이념과 동일한 민족의 자산이자 한민족의 분단 · 이산 · 대결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생명존중 · 평화정착 ·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정신적 · 문화적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제 (사)김포여성의전화는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평화를만드는여성회, 여민문화연구소, 등과 뜻을 모아 그 의미를 오늘에 온전히 되살릴 수 있는 『매향제』를 준비하려 한다. 고향땅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돌아갈 수 없는 역사의 산 증인 길원옥 할머니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2017 김포매향제』를 김포시민의 힘으로 열어가려는 것이다. 일본의 사죄와 통일, 평화를 갈망하는 길원옥이 부르는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가 한강을 넘어 대동강변에 울려 퍼지길 바라는 정성을 모아 본다.

 이번 매향제는 할머니의 신발을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그 곳에 매향하려 한다. 할머니께서 세계의 전쟁피해자들을 만나러 가실 때,  UN회의, 그리고 일본의 만행을 지탄하는 각국의 지지자들을 만나실 때 신고 다니셨던 신발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준비 팀은 10월 14일 오후 할머니를 방문했었다. 그리고 값진 할머니의 신발을 소중히 받아 왔다. 통일의 그날에 할머니의 고향땅에 다시 모셔드리기 위해,
 굴곡의 삶을 할머니와 함께 살아 온 신발을 받아오던 날, 열세 살 곱디곱던 길원옥 할머니의 발은 어느덧 아흔을 바라보며 굳은 살 박혀 있었다. 그 발의 본을 떠서 작품으로 남겨 우리들 가슴속에 깊이 새겨 나가는 시간도 가졌다.
 또 한 사람의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께서 현재의 답답한 상황에 대해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을 말씀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부끄럽게 하셨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눈물 젖은 손수건과길원옥 할머니의 신발을 ‘애기봉’ 근처에 ‘매향’할 수 있게 되었다. 김포티브이 방송에서 이 모든 순간을 생생히 기록해 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김포는 강 건너로 한반도의 반쪽, 북녘 땅을 마주하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의 생생한 현장이다. 이곳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의 ‘염하강’ 한강하구는 실향의 한(恨)이 서려 있다. 언론을 통해 대중들로부터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애기봉’ 근처 조강나루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남과 북을 거쳐 유유히 흘러온 강줄기는 오늘도 그저 드넓은 바다로 가고 있다. 그 어떤 구획의 표시도 없으며, 아무런 장벽도 보이지 않는 물결위로 분단의 고통과 실향의 아픔이 함께 흐른다. 한국전쟁과 휴전협정 이후 우리 민족에게는 통한의 『민간인통제구역』이 되었지만 오래전 모습 그대로 강물은 굽이쳐 흐르고 있다. 이 역사적 의미를 가득 품어 안고 있는 땅위에 온몸으로 역사를 살아오신 길원옥 할머니의 소원을 길이 새기는 일이 오늘 분단의 현장 김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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