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萬券書 行萬里路 독만권서 행만리로

▲ 박형숙
김포문화재단 문화유산팀장
중국 명나라 말기의 서예가이자 화가인 동 기창(董其昌:1555~1636))의 말로, 서화(書畵) 에서 향기가 나려면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를 공 부하던 대학시절, 책과 기록을 통해 과거를 읽고자 했다면, '미술사'를 공부한 대학원시절 에는 각지의 유적과 유물을 직접 실견(實見) 하면서 '조형언어'를 통해 과거의 진실에 가까 이 가고자 했다. 책을 백번 읽어도 실제 유적 과 유물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지 못하 면 그것은 죽은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 때부 터 동기창의 말이 내 인생의 한 마디가 되었다. 조선후기 18세기 사대부들 사이에서 산수를 유람하는 풍조가 크게 유행하였다. 단 양팔경, 관동팔경 그리고 금강산까지 먼 길을 마다않고 앞 다투 어 종이와 붓을 들고 명승 유람을 떠났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멋진 절경을 보면 비로소 천지(天地)의 기밀을 느껴 시를 더 잘 짓고,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러한 배경 속에서 우리 산천의 참모습을 그린 '진경산수(眞景山水)'가 태동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학자 김창협(金昌協)은 금강산 의 구룡연 앞에서 이렇게 읊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 갑자기 기이하고 장엄하니

내 마음도 우쭐거려져 어제와 다름을 느끼겠노라.

대개 사람의 마음이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알겠도다.

-김창협, 『농암집(農巖集)』 「동유기(東遊記)」 중에서-

문학과 예술 뿐 아니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금이 야말로 책을 덮고 떠나야 할 계절, 가을이다. 길 위에서, 책 속에 서 미처 찾지 못한 인생의 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성 : 이재영 (사)김포예총 부회장>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