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정순 김포사할린한인동포회 회장


-사할린에서의 생활은?
"아버지(최태봉. 1966년 사망)는 19살 때인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당해 사할린으로 왔다고 합니다. 경북 의성 출신이셨는데 1944년 경주가 고향인 어머니와 결혼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강제징용 전 일가족이 일본을 거쳐 사할린으로 이주하셨던 것이지요. 두 분이 결혼하셔서 1946년 내가 태어났습니다. 당시 한인을 위한 학교는 없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러시아 학교를 다녔지요. 대학에서는 물리를 전공하고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은퇴했습니다."

-러시아에 오래 살았는데 한국말을 잘 한다.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두 살 위인 남편과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둘 모두 결혼해서 손자들이 있지요. 사할린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머리 색깔이 다르고 피가 다른 것이 섞이면 안된다는 신념이 있어요. 저도 그렇고 우리 애들 모두 한국사람하고 결혼했습니다. 요즘들어 러시아 사람하고 결혼하는 예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거의 대다수는 한국사람끼리 결혼하고 한국말과 글씨를 익히고 있어요."

-영주귀국을 결심한 동기는?
"어머니가 늘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며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말씀을 했지요. 그러다가 서울올림픽 끝나고 1989년 한국 방문기회가 와서 서울에 왔는데 사할린과 달리 놀랍게 발전한 서울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게다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을 보니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습니다. 이게 바로 조국이구나 했지요. 한국에도 못사는 사람이 많지만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로 오래 있어서 평생 일을 하고 은퇴해도 넉넉한 살림을 살 수는 없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영주귀국하기로 마음먹고 2009년 귀국했습니다."

-영주귀국 절차는 어떻게 되나?
"해마다 영주귀국할 수 있는 티오가 나옵니다. 귀국을 희망하는 사람이 정원보다 많으면 생년월일을 따져서 순번을 정하지요. 1945년 8월 15일생까지 귀국을 신청할 수 있는데 부부 중 한 명만 해당되면 귀국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남편이 1944년생이라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거주할 도시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거주할 아파트가 준비돼야 하기 때문에 꼭 원하는 곳에 살 수는 없더라고요. 저는 김포가 서울과 가깝기도 하지만 아파트가 나온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김포로 오게 됐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올 수 없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부부만 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생이별을 하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자녀들까지 귀국하면 나라에서 지원해야 할 금액이 많아져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국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잘 사는 나라가 됐는데 이건 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에 의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은 사람에게 또다시 자녀들과 이산가족이 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요."

-한국에 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주귀국 사업에는 사할린 가족을 방문할 수 있는 역방문사업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 돈으로 무료로 갔다올 수 있는 제도인데요, 이게 차례가 잘 안옵니다. 6년 전에 한 번 갔다온 사람의 경우 아직까지도 차례가 오지 않고 있습니다. 자비로 사할린에 갈 수는 있는데 이 경우도 사할린 체류기간이 90일에서 하루라도 넘으면 수급비가 끊겨버립니다. 수급비 신청을 새로 해야 하고요. 나이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기초수급비는 한 명당 한 달에 40만원에서 50만원 나오는데 이 돈에서 임대료 내고 각종 공과금 내고나면 남는 게 없지요. 그렇다고 어디 나가서 일하면 그나마 수급자에서 탈락되고 맙니다. 나이가 많아 써줄 데도 없지만 그렇다고 쥐꼬리만한 수급비만 바라보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이곳 마송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근황은 어떤가
"김포에는 마송에 123명, 구래동에 132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각각 한인회가 조직돼 있는데 저는 마송의 사할린한인동포회 회장을 맡고 있지요. 마송에는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돼 사할린에 간 실질적인 1세대는 없습니다. 1세대의 자녀들로 70세부터 가장 고령자는 86세입니다. 123명 중 여자는 75명이고요. 여기에 와서 배우자와 사별한 분도 4분 있습니다. 자녀와도 이별하고 왔는데 배우자와도 이별하게 돼 외로운 분들입니다. 저희 회원들이 자주 찾아뵙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자식들보다는 못하겠지요."

-한인동포회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사할린 방문 사업을 맡아서 합니다. 신청받아 순번을 정하지요.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무료로 방문할 수 있는 숫자가 많지 않아 어려움이 많습니다. 영주귀국한 분들이 나이도 많고 자녀와도 같이 올 수 없어 외로운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북부복지관과 연계해서 프로그램도 많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3월 8일 같은 경우 러시아에서는 '여성의 날'이라 해서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자 축제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 날엔 모든 여성들은 선물받은 꽃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곤 합니다. 그래서 지난 3월 8일에는 노인복지관에서 큰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진 않나
"병원도 시설이 좋고 보험제도도 잘 돼 있어 살기에 좋아 후회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할린에 두고 온 자녀들을 보고싶을 때 볼 수 없어 너무 가슴 아픕니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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