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어린이들의 사고소식, 고통을 아이 혼자 견뎌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오정아
  김포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

안동의 한 산부인과에서 일어난 신생아 화상에 관한 뉴스로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안타까움에 눈물짓고, 그 정도의 심각성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분노하고, 또 분노할 일이다. 관계자는 자신들이 잘 돌보았어야 할 책임의 부분까지도 모두 전기장판의 오작동에만 전가하였다. 또한 책임을 회피하려 마치 다른 질병이 온 것처럼 해 다른 병원으로 옮기게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 격이다.

사실 아이들의 사고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물론 안타까운 뉴스는 꼭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사건 사고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의지나 사회적 관계에 상관없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 마음이 아프다. 특히 어른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는 아파트 벤치 앞 유모차에서 자고 있던 한 아이가 어디선가 날아온 담배꽁초에 화상을 입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소식은 일본에서 몇 년 전 담배를 피우며 보행 중이던 사람의 담뱃재에 눈을 다쳐 실명을 했다는 어린 아이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남성에게는 성적인 폭행의 대상이, 어떤 어린이집 교사에게는 스트레스와 화풀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어른에게는 이유 없는 염산테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어른들은 대부분 당당하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나의 취향이고, 성폭행은 술에 취해 기억이 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체벌을 담은 CCTV는 영상을 고의적으로 편집했거나 우리가 잘 못 보고 오해한 거란다. 어떤 어린이집 원장은 가해교사와 만나기를 요청하는 학부모에게 오히려 다그치기도 한다. ‘당신 하나 때문에 여기 문 닫으면 갈 데 없는 아이들이 많다’며 참으로 당당하다.

매체별로 안동지역 산부인과의 대응에 대한 보도 내용이 다르다. 어느 한 매체는 원장이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썼다는 보도를, 또 다른 매체는 과실을 인정하긴 하지만 공식적 입장은 밝힐 수 없다는 내용 등 다양하다. 어떤 내용이 진짜인들 사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말인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통용되는 책임의 일반적인 형식은 진심어린 사과와 물질적 보상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한 아이의 인생을, 꽃처럼 어여뻤어야 할 이 아이의 뽀얀 등을, 그리고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평생을 숨기려 애쓸 이 아이의 고통을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며칠 전 10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독감예방접종을 갔다. 주사를 맞는 1, 2초 찰나의 순간에도 아이는 커다란 울음으로 자신의 아픔을 표시한다. 문득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온 몸이 데이도록 아팠을 그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 아이들도 아프다고 울고 또 울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이 아이들의 울음을 듣지 못한 걸까?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그 고통을 오로지 아이 혼자 견뎌내야만 한다는 사실이, 우리는 그저 꼭 회복되라는 간절한 마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는 이 현실이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써 그저 미안할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 내 아이에게도,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나쁜 어른들은 모두 그에 맞는 죗값을 받게 할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약속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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