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공장을 세우려고 김포시를 상대로 10년간 ‘나 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김성한씨. 지난 94년 대곶면 율생리에 낸 첫 허가신청을 시작으로 올해 10년째를 맞는다.
공장 하나 세우기 위해 행정기관의 부당한 불허처분에 10년간 맞서 소송을 벌였다면 세상은 그를 ‘바보’라 할지 모르지만 끈질긴 집념과 관련분야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은 그를 ‘겸손한 전문가’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허가 신청한 여섯 건 가운데 97년 대곶면 대명리에 신청한 마지막 것이 1·2심 승소에 이어 곧 있을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 최종 판결 낙관
“1심 나홀로 소송에서 승소했을 뿐만 아니라 원심판결이 워낙 구체적이며 상세해 만약 대법원에서 패소할 경우 김포시 관내 레미콘공장은 물론 국내 대부분의 레미콘 공장은 폐쇄하라는 판결이 되는 것이어서 승소를 낙관합니다.”30여년간 레미콘업에만 종사하다 지난 10년 전 자신의 회사를 세우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던 김성한씨는 승소의 기대에 앞서 “그동안의 재판과정은 훌륭한 교육의 장이었다”고 회상한다. 10년의 세월과 재산은 잃었지만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경험과 다양한 전문지식을 얻었다고.
김씨가 처음 김포와 인연을 맺은 건 지난 94년. 1개면에 1개의 레미콘공장을 둘 수 있다는 당시 김포군 규정에 따라 김성한씨가 재직중이었던 현대그룹 산하 고려산업개발이 양촌면에 공장설립을 추진하자 그는 독립을 작정하고 대곶면에 회사설립을 추진하면서 김포시와 악연같은 인연이 시작됐다. 94년 첫 번째 허가를 신청한 대곶면 율생리와 약암리(95년)는 예정지 주변 5백m 이내 주택2동과 농경지 등이 있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김씨는 기존 공장주변에 더 많은 주택 등이 있어 허가가 나올 것으로 생각, 불허처분이 부당하다며 경기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어 96년 송마리 신청건은 면소재지 차량통과가 문제가 됐다. 97년 대명리 허가신청은 99년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했으며 99년 신청한 초원지리건(농지·임야 확인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2000년 대명리 신청건만 유일하게 1·2심에 모두 승소하여 마지막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 2002년 9월 인천지법은 김포시의 불허처분에 대해 7가지 부당성을 지적하고 “레미콘공장이 설립된 이후 운영과정에서 행정적 제재를 통해 공해방지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데도 교통혼잡·먼지·소음·환경오염 등의 공해가 예상된다고 예단해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첫 허가를 신청한 지 7년만에 김포시 행정이 부당하다는 것을 재판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김씨는 이때를 회상하며 “94년부터 1년에 한번 꼴로 6번이나 공장허가 신청을 했지만 김포시가 여러 가지 이유를 달아 불허 처분했다. 2001년 6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뒤 나 홀로 재판에서 변호사협회 회장을 소송대리인으로 내세운 김포시에 승소, 가능성을 재차 확신했다”고 전했다.

포기않는 자세…10년 소송의 힘
10년간 공장설립을 위해 소송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김성한씨는 주위로부터 “정치적인 해결권유도 받았으나 이럴 경우 결국 회사자금이 정치인에게 상당수 유출될 수밖에 없고 결국 탈세 등 탈법경영을 할 수밖에 없어 응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는 공장설립과 소송준비를 위해 아파트를 파는 한편 대학도서관 공공근로 등 쉽고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일을 찾아 생활비를 보탰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서울 ㄷ대학원에서 레미콘 공장설립 관련 논문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충남 홍성이 고향인 김씨는 63년 광천중학교<당시 탁구선수>에 수석 입학했으나 집안문제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위기를 맞자 검정고시를 거듭하며 대학원까지 졸업하는 집념을 보였다. 그리고 해군 제대 후 잠시 연합철강에서 실업팀 활동을 한 바 있는 그는 91년 창업을 준비하던중 교통사고로 실명하게 되고 3차례의 수술 끝에 사형수의 안구를 기증받아 재활의 길로 들어섰다. 어떠한 상황 속에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10년 소송’의 힘으로 작용했다.
김성한씨는 대법원의 재판결과가 앞으로 다른 레미콘공장의 허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부정적이다.
“허가 될 만하다 하여 신청해 본 10여 곳 모두가 불허되었고 김포시 지형 지세상 허가될 만한 입지도 없다. 그간 김포시는 1-10등급 토지 전부를 안 된다고 불허한 것이어서 내가 승소할 경우 1등 급지에서의 허가이기 때문에 제3의 허가에 인용될 수는 없다”고 전망했다. 특히 김포신도시 관련 레미콘 수요급증을 예상, 레미콘 회사가 너무 많이 생겨도 곤란하다는 견해다. 현재 김포시로 인천, 부천 등지의 30-40여개의 공장에서 레미콘납품이 이뤄지는 상황이며 신도시가 건설되면 현장 건설회사의 레미콘 기계가 설치되기에 수요·공급원칙에서 전부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견해는 김포가 반도라는 특성에 기인한다. 인천·부천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는 강과 바다로써 인근지역 유입이 차단, 이곳에서 생산된 레미콘은 여기서만 해소되어야 하나 공급과잉 현상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직후 60분내에 타설돼야 하는 레미콘 특성상 교통사정 등으로 이동시간이 예측 불가능한 인천·부천 등지로 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란다.

그간 고생시킨 市공무원에게 죄송
10년전 김성한씨와 그가 재직한 고려산업개발이 각각 양촌과 대곶에 허가절차를 시작한 이래 현대그룹사인 고려산업개발은 대법원에서 패소해 포기했고 김성한씨만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 볼 때 그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겨진 것이 하나 있다. 담당 공무원이 법정에서 폐수 등과 관련 거짓 증언을 해 패소했고 결국 담당공무원을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위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4-5년이 걸리며 또한 위증을 밝히지 못하면 다음 재판에서 패소하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처벌된 당사자에게 불편한 마음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허가과 담당 공무원들을 10년 가까이 차 한잔 대접하지 못하고 고생시킨 것에 대해서도 그는 미안하다.
“10여년에 걸친 김포시와 나의 재판은 공직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충돌한 데서 발생했으며 재판과정을 통하여 내가 부당하다고 느꼈던 일들이 공직의 입장에서 보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법을 떠나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행정기관의 고충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10년에 걸친 법정 공방으로 그는 레미콘업계 관련법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상대의 고충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겸손도 가지게 됐다. 그는 10년에 걸쳐 체득한 이들 무기로 대법원 판결 후 경영할 수 있게 될 그의 회사(김포레미콘)에 대한 밑그림을 차분히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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