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수용당하는 어느 가족 이야기

신도시에 1차수용→ 학운2산업단지에 2차수용→ 학운3산업단지에 3차수용→ ??
< 자 가 공장>                   < 자 가 공 장 >                              <임대공장>
거래처가 주변에 산재해 있어 이사가면 거래처 확보가 가장 큰 문제
세금은 징수하면서 사업보상 않는 건 모순… 보상금으론 빚 갚기 바빠



글쓴이 : 김유진 (학운3산단 수용대상 일신산업 김일성 대표의 차녀)

우리집은 익산에서 이사와 16년째 김포시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다. 부모님께서는 이곳에서 사업장을 꾸리고 지금까지 일해 오고 계신다.

처음 상경해서는 인천 오류동에서 원목액자를 생산하는 일을 하셨는데, 방글라데시 노동자 5명을 데리고 부모님께서 직접 원목을 재단하고, 디자인, 페인트칠, 포장까지 하며 거래처로 납품하셨다.

사업이라는 말이 무색한 영세기업이라 부모님 스스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고된 노동을 계속하셨다. 그당시 중학생이던 우리 자매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간단한 반찬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지만 부모님께서 고생하시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때마침 불어닥친 IMF 한파로 거래처가 줄줄이 도산하는 가운데 부모님께서는 그저 이 악물고 일만 하시며 버텨내셨다. 야위어가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있었기에 우리 자매는 화장지 쓸 양도 정해 한 칸이라도 아껴 쓰고, 학원 다니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문제집도 물려받아 지우개로 지워가며 공부했다.

3년의 모진 상황 속에서 가족이 똘똘 뭉쳐 묵묵히 버티다 보니 우연한 기회로 부모님께서 대출을 받아 김포 마산리에 조그만 공장을 마련하셨다. 맨손으로 일군 첫 공장에 고사를 지내며 부모님께서 감격에 북받쳐 하시는 모습을 잊지 못한다.

마산리 공장에서 그간의 노하우를 활용해 부모님은 신바람 나듯 일하셨고 그동안에 우리 자매도 나란히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여 부모님 얼굴에 드디어 웃음꽃이 피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한강신도시 개발로 마산리도 함께 수용이 되면서 또 다시 시련을 맞게 된다. 보상금으로는 공장의 대출금을 갚기에도 버거웠고 또다시 대출을 받아 학운리로 이사를 가야 했다. 또한 당시 액자 사업은 사양 산업이라 대부분 인건비가 저렴하고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는 중국으로 이전을 하는 추세였는데, 중국으로 이전을 할 여력이 없는 부모님께서는 업종을 가구 쪽으로 전환하셨다.

그러나 가구 쪽 일이라는 게 건설업체의 관행상 월말에 납품을 해도 40일이 지나 결제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보니 결제 직전 부도나는 일이 빈번했고 부도 메꾸느라, 대출금 이자 갚느라, 새로운 업종 IMF를 버텨냈지만 정부의 강제적인 정책으로 또다시 시련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허리 펼 새 없이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셨고, 우리 자매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니고 알바를 하며 방학에는 부모님 공장에서 짐 나르는 일을 도우며 또 함께 극복해 나가려 노력했다. 그런 세월을 5년 또 버텨내면서 우리 자매는 대학교를 졸업을 했다.

부모님께 학사모를 씌워드리며 보니 힘겹게 살아오신 부모님 얼굴의 주름은 야속하게도 깊어가는것 같았다. 이제는 직장에 취직했으니 학자금도 조금씩 갚고 부모님 대출금도 같이 갚아드리며 성실하게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학운 2산업단지 조성정책이 발 표되며 부모님은 또다시 내쫓기게 되었다. 창고로 허가 났던 공장이라 토지 보상도 시세를 훨씬 밑도는 금액으로 책정되었고 영업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토지 보상은 둘째 치더라도 영업보상에서만큼은 부당한 부분이 있었다.

정부에서 사업자등록을 내주어 세금은 정확하게 다 징수해가면서 사업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부모님께서 탄원을 하셨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영업보상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턱없는 보상금으로는 은행 대출금을 온전히 갚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공장을 사지도  못하고 이제는 임대를 받아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14년 동안 뼈 빠지게 일했는데도 영세기업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물론, 이제는 공장마저 없이 임대 신세가 되었지만 부모님께서는 그나마 언니와 내가 장성하여 든든한 버팀목이 된 걸 위안 삼으며 또 다시 묵묵히 일하고 또 하셨다.

그런데 2013년 4월, 정부는 또다시 개발을 감행한다고 한다. 경기가 워낙 좋지 않다보니 학운2단지의 입주도 불투명하여 도시개발 직원들이 발품 팔아 공장을 돌며 입주를 권유하고 다니는 실정인데 그도 모자라 3단지를 또 개발한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그 필요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쫒겨나면 어디로 가야하나 그동안 이곳에서 개척한 거래처는 어떻게 다시 확보 할수 있는지가 가장 걱정이다.

하신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협력관계가 이루어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투명한 경기 속에서 새로운 거래처 확보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고 하신다.

16년 동안 노동을 한 대가로 부모님은 영세 공장의 임대 세입자로 전락했고, 가족이 똘똘 뭉쳐 아무리 이겨내려 해도 계속되는 수용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 같다. 서민을 계속 사지로 내쫓는 강제수용은 IMF보다도 더 매서운 한파인 것 같다.


인터뷰_ 아버지 일신산업 김일성 대표
"거래처가 다 끊어질 위기다"

-세 번씩이나 수용당하는 심정은
가구를 조립하는 데 필요한 임가공을 하고 있다. 인건비 상승과 경기불황으로 어려움이 증폭되고 있는데, 이번에 또 수용당하는 상황이 되니 앞이 캄캄하다.

보상도 필요 없다 여기서 사업만 하게 해 달라. 세 번 수용당하면서 자가 공장은 잃었고, 임대사업자로 전락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지금 현실이 말해주는 것 아닌가.

-일부 보상으로 돈을 번 기업도 있다 던데.
마산리와 학운2산단에서 자가 공장을 운영했지만, 보상금으로 은행 빚을 갚고 나니 손에 쥔 게 없었다. 창고를 형질변경 중에 고시가 떨어져 창고로 보상을 받다 보니 손해가 많았다.

세금은 정직하게 냈는데…보상은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얄밉다. 어려운 사업가들의 현실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모두가 김포시민들이자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들이다.

- 수용으로 인한 피해는
가구에 필요한 자재를 설계에 맞춰 재단하는 임가공업이다. 영세하다 . 희망과 성실성으로 회사를 끌어왔지만, 다시회사를 이사해야 할 상황이 오니까 걱정이 크다.

거래처와의 접근성이 가장 중요한데 이곳을 떠나면 거래처가 상당수 끊어질 위기다. 공장을 짓는다 해도 집진기 시설 허가가 나지 않아 그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김동규 기자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