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여는 사람들 - '함께 졸업, 함께 입학' 새내기 대학 친구

대학 수시 모집에 이어 정시모집 마감도 끝났다. 요즘 대학입시는 자녀는 물론이고 학부모도 입시 과외를 받아야한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

사회의 치열한 경쟁속에 명문대 입학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지만 도심을 벗어난 읍면에서 변변한 사교육 없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청년들은 단연 지역의 자랑거리다. 

배치고사를 나란히 1, 2등으로 입학하고 다시 서울대에 함께 입학하는 학생들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양촌읍 양곡리 양곡고등학교의 문건기(19, 남), 유경림(19, 여) 학생. 

두 학생의 모교인 양곡고는 21개 학급에 전교생이 760여명. 3학년은 일반계 145명과 전문계 학생 83명의 작은 학교다.

1963년 개교했지만 학교건물은 1953년에 지어져 환갑을 앞두고 있다. 창틀을 거의 손보지 못해 겨울에도 교실 온도가 7~8도. 하지만 건물의 외형과는 달리 사제관계는 용광로보다 뜨겁다. 선생님은 자식을 다독이는 부모이고 눈물로 고민을 나누는 친구다.

이홍천 교장선생님도 학생들과 허물없이 지내기는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학교가 집보다 편안하다고 생각하면 바람직한 학교 아닌가요? 문제아이는 없어요.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높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얼마전 김상곤 교육감이 학교를 방문했다. 양곡고가 경기도 사립고등학교 최초로 혁신학교로 예비지정됐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의 혁신학교 신청에 궁금해하던 김 교육감은 학교와 학생들의 분위기를 돌아보고는 흡족해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혁신형 초등·중 학교가 즐거운 학교를 지향하지만 혁신형 고등학교는 덧붙여 실력향상에도 초점을 맞춘다.

사립학교인 양곡고는 교사 안정성이라는 장점을 살리면서 정체되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해 왔다. 2009년 사교육 없는 학교, 2001년 교원자질혁신프로그램(NTTP), 2013년 혁신학교 지정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 

교육공동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 학교가 하나되어 즐겁게 실력을 키워온 두 예비 새내기 대학생을 만났다.

문  건  기 학생
문건기 군은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어려서부터 워낙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고 카이스트 영재기업인교육원에 뽑혀 영재교육도 받았다. 특허출원만 5건에 이미 1건은 특허로 등록이 되어있다. "어플 알고리즘 특허를 친구들과 공동으로 가지고 있어요. 제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제안해서 지분이 제일 많죠"

중학교때부터 IT와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고 과학고에 진학하려했지만 올림피아드 수상 실적이 없어 과학고 진학의 뜻은 접어야 했다.

잠시 학과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IT면 정보통신인데 경영학과를?' 하지만 곧 답이 나온다. 졸업후 목표가 "IT분야 창업"이라며 딱 부러진 대답을 내놓는다. 창업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벌써 IT와 경영 두 분야의 컨버젼스가 되어있다.    

건기 군은 검도 3단에 축구와 농구 등 야구 빼고는 거의 모든 운동을 좋아한다. 운동 좋아하기야 보통 열혈남아라면 당연지사겠지만 운동과 공부만큼 친구도 소중하다고 말한다. "3년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기숙사에서 친구들과의 추억들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담 넘다가 교장선생님께 크게 혼나기도 하고요"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는 '호기심 천국'이라고 써있는 듯하다.

웃음끼(?)에 장난끼(?)가 가득한 천상 사내지만 그런 그에게도 아린 곳이 있다. "어릴적 기억에는 잘 살았어요. 그러던 중 건설업하시던 아버지가 부도를 연달아 맞으면서 차압이 계속 들어오고... 5살 이후로 이사만 5번 이상 한 것 같아요"

아버지는 건설 일용을 하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마저 일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사춘기 중학생은 여전히 천둥벌거숭이처럼 "방황의 지름길"을 걷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집안의 어려운 사정을 제대로 알게 되었죠. 언젠가 아버지가 '1등 안하면 안되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뒷받침이 어려우니 웬만큼만 공부하면 안되겠냐는 말씀이셨죠" 정신이 번뜩 든 건기 군은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집중했다.  

그런 아들의 합격소식에 아버지는 담담했고 어머니는 "펑펑" 울었다. "저에게 양곡고는 모교이고 고향입니다. 저보다 더 어려운 친구들이 많아요. 저는 부모님 성하신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위의 시선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그렇게 어렵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인터뷰 내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잃지 않는 그에게서 조금의 불편함도, 구김살도 찾을 수가 없다.

건기 군은 수능시험후 대곶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편의점으로 발길을 재촉하면서도 친구들과 장난치며 인사나누기에 바쁜 19세 새내기 대학생 문건기 군. 인생 내내 아침의 청명함이 계속될 것만 같다.    

유  경  림 학생

유경림 양은 독어독문과를 선택했다. "글이나 언어를 다루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교때 독일의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글을 가다듬는 것과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됐죠"

처음 경림 양은 외고로 진학하려했지만 학비 걱정에 부모님이 더 힘들어하실까 마음을 접었다. 또 2살, 6살 터울의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현실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동생들이 있어서 잠시 미뤘습니다. 후회는 없고요" 

경림 양의 가정은 평범했다. 아버지가 서울 종로의 우체국에 근무하며 당시 중산층 그대로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가족이 2001년 김포로 내려왔고 경림 양은 김포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시작한 사업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김포서초로 다시 마송초로 초등학교를 여러번 옮겨야만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힘든 일상속에 자식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늘어만 갔다.

"올해 고2 올라가는 여동생과 중학교에 입학하는 남동생이 있어요. 동생이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들 씩씩하게 삽니다. 후후" 

동생들이 어느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자 경림 양은 2011년 2학년 말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양곡고 입학했을 때 제일처음 기숙사가 눈에 들어왔어요. 더도 덜도 말고 딱 제 생각대로 였습니다. 가족같은 분위기가 공부 집중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번역가가 목표지만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분야로 뻗어가고 싶다"는 경림 양. 우선는 입학 후 친구도 다양하게 사귀고, 많은 곳으로 여행도 떠나고 싶단다. 남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공부가 아니었다며 집중력과 함께 절대적 공부시간을 늘리기 위해 만들지 못한 추억들이 켜켜이 묻어난다. 

동생들을 돌보며 공부에 매진한 딸의 합격소식에 부모님은 "고맙다"며 담담하게 한마디를 건냈고 경림 양은 그 말의 애잔함을 가슴에 담았다. 

"저에게 양곡고는 '성장할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꾸준히 하다보면 공부가 쉬워지는 순간을 깨닳는 때가 있어요. 후배들이 절대 미리 포기하지 않았으며 좋겠습니다" 후배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친 경림 양은 동생들 밥도 챙겨주고 인터넷으로 아르바이트도 알아봐야 한다며 "놀면 뭐하겠어요" 해맑게 웃고는 총총히 집으로 향했다. 애틋한 동생 사랑과 함께 앞으로 세상을 향한 궁금한 호기심도 묻어난다.     

두 학생이 말하는 공부팁은 2가지. 문건기 군은 "내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선생님의 '입' 입니다. 수업시간 만큼은 무조건 집중해서 들어요. 선생님이 비중을 두고 수업하시는 부분이 바로 출제되는 문제니까요"라며 수업시간 집중이 내신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또, 두 학생은 유독 입을 모아 스터디플래너(공부계획표)의 활용을 강조했다. "공부스케줄을 세분화해야 합니다. 전과목별 개념서와 교과서를 일, 주, 월 별로 분량과 회독, 시간을 적고 스스로 체크해 가며 공부해야 효율적으로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어요. 2학년 겨울방학때 적용해보면 좋습니다"

둘이 친하냐고 묻자 "이제부터 좀 친해 보려고 한다"며 서로 멋적게 웃는다. 어디서든 모교와 고향, 함께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으며 살기를 기대해 보며, 인생 새학기를 시작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박수를! 

-인터넷판 마감- <지면 _1048호 2013년 1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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