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 목사 (마조교회 담임. 성결대학교 교수)

<시론>말의 미학

사람은 말로 생활하며, 말로 희노애락을 느낀다. 말을 통해서 소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일이 생겼다.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말을 하면 할수록 정국이 꼬여간다고 한다.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지 1달이 넘었다. 그래도 국민과 정부는 소통이 되질 않아 정국이 답답할 지경이다.
언어, 즉 말은 인류문화를 발전시킨 최고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말은 지금도 인간을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고 있다. 인류사회는 많은 사람들 끼리 만나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문화교류가 되어지고 그 교류의 수단에는 반드시 말이나 글이 도구로 쓰이고 있다. 버릴 수 없는 인간의 필수적 수단이고, 도구라면 다듬고, 갈고, 닦아서 서로에게 유익이 되도록 했으면 한다.
말은 마음의 생각을 표현해 내는 도구이다. 좋은 말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말은 마음에서 나와야 하는것이다. 진심을 표현한다면 감동도 있고, 감격도 있다. 그리고 포용도 되고, 소망도 된다. 성경 잠언 10장 8절에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하였고, 12장 14절에는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하였으니 입을 통해서 망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언어는 인식과 사유, 의미와 가치의 원천이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국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이 때에 언어는 정치인의 리더십이다. 국민이 정부에 다가가는 말이 나와야 할 것이다.
사람이 가장 귀하게 표현되는 것이 축복의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필자는 강의실에서 집회장에서 간혹 상대편에게 축복의 말을 해 보라고 권해 본다. 모두들 힘겹다고 표현했다.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내 자신에게 축복의 말을 해 보자. 그리고 함께 있는 상대편에 축복의 말을 표현해 보자. 이것이 훈련되어야 할 귀중한 교육이라 의심치 않는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 사람들은 말의 표현이 달라야 한다. 어느 신문 칼럼에서 이런 글귀를 읽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 때문에....<‘대통령 노무현’을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는 그의 거침없는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를 따돌림 당하게 한 것도 그의 막가는 말이었다. 대통령 후보 시절 그가 “남북관계만 성공시킨다면 다른 건 깽판 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표현의 솔직함에 오히려 호감이 갔다. 그러나 취임 직후 검사와의 대화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말할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다. 진솔한 표현도 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말은 없어서 안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국민들이 귀 기울이고 있다. 아니 지도자들의 말 한마다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너무나 잘 아는 말이지만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말이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증오의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하며,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불씨가 되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씨를 끄며. 은혜의 말 한마디가 길을 편하게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하고,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게 하며,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받게 한다.”
말을 빛내는 것은 신중함과 절제에 있다. 삼성그룹의 총수 이건희 전 회장은 좌우명으로 “경청”이라 했다. 남을 존중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따뜻한 눈길로 눈높이를 맞추어 보자. 말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즉석에서 전달됨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무서운 흉기로 돌변하여 상대방을 본의 아니게 공격하고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신중하게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모두에게 포근함을 주는 말의 미학을 배우자.


이광열 목사(마조교회 담임. 성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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