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 명예교수

아내는 거의 매일 도내에 사는 딸과 카톡 전화로 온갖 수다를 떤다. 처음에는 나를 불러 통화를 시작하더니 이제는 통 사정을 해야 겨우 대화에 끼워준다. 영국에 있는 아들과도 사흘이 멀다고 통화를 하는 아내는 손주의 근황을 실시간으로 챙긴다. 

기억컨대 아들과 딸이 내게 직접 통화를 시도한 경우는 거의 없고, 저네 엄마와 통화가 안 될 때 수소문 차원의 전화가 고작이다. 그것도 횟수는 다섯 손가락 안이다. 수년 전으로 거슬러 가도 기억되는 나와의 대화는 등록금 송금 요청 정도가 전부이다. 

반추해 보면 섭섭하다 못해 괘씸하다는 옹졸한 생각이 스친 일이 여러 번 있다. 아내를 통해 들은 이유는, ‘아빠와 통화를 하려면 긴장되고 또 분위기가 무거워 내키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사필귀정, 즉 내가 뿌린 결과이다. 

젊은 시절 아이들을 교육한답시고 묵직한 몇 마디 말로 딱딱하게 반항할 수 없게 만들었었다. 이에 반해 아내는 엄마로서 자잘하고 촘촘하고 보드랍게 그들과 소통했었고 여태까지도 그 끈을 쥐고 있다. 노자가 말했듯이, 딱딱한 이빨보다 부드러운 잇몸이 더 오래가는 것이다. 이렇듯이 국가 간에 미치는 강제적 힘을 딱딱한 힘(hard power), 감동적 힘을 부드러운 힘(soft power)이라고 부른다.

‘부드러운 힘’의 개념은 정치적 용어로서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조지프 나이(Joseph Nye)박사가 창안한 말이다. 그는 설득의 수단으로서 돈이나 권력 등과 같이 강요가 아닌 매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이렇게 불렀다. 딱딱한 힘은 군사력, 경제력, 자원 등 상대의 이익을 위협하여 강압하는 능력이고, 부드러운 힘은 상대가 스스로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위력이다. 2004년 ‘세계 정치에서 성공 수단인 부드러운 힘’에서 처음 등장한 부드러운 힘은 외교 현장과 언론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국제 관계에서 부드러운 힘의 원천은 특정 국가의 문화 양상이나 민주적 가치관, 정치적 목표 등으로 인해 발휘되는 ‘장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리적 강제력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매력의 힘을 말한다.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부드러운 힘은 문화력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교육, 학문, 언어, 예술, 과학, 기술 등 다양한 이성적, 감성적, 창조적 분야를 포함한다. 신뢰를 통한 사회적 자본 개념을 도입하여 자발적, 호혜적 협력을 끌어내는 규칙이 된다.

딱딱한 힘과는 달리 축적을 통해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신뢰와 사회자본은 증가하는 순환과정이 일어난다. 다행히도 최근 우리나라는 부드러운 힘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어서, 일본에 이어 아시아 2위, 세계 19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한류로 나타나는 문화 강국이 되고 있다.

특히 부드러운 힘의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대부분 민간인 집단인데, 따라서 그것의 확산과 발전은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좌우되므로 국가 주도의 문화산업 국가와는 비교가 되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는 민간주도적 문화산업이 국가 주도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하리라고 예측되므로 유리한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끊임없는 부드러운 힘의 개발을 위해 우리보다 앞선 국가들의 현황을 지렛대 삼아 우리의 이상적인 모델을 지속해서 창출해 갈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웃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도 있다. 

아시아에서 일본은 부드러운 힘의 조사자료에서 줄곧 전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대표적 문화 강국이다. 일본의 부드러운 힘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축적된 것으로, 초밥을 비롯한 음식, 분재, 이모지, QR 코드, 꽃꽂이, 종이접기, 닌자, 사무라이, 기모노, 게이샤, 벚꽃, 온천, 후지산, 가라오케, 하이쿠, 스도쿠 등은 전 세계에 동양에 대한 주도적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데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일본의 사례를 자극으로 삼아 우리도 다양한 장르들을 꾸준히 실험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자존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문화 강국을 만들어가는 일은 결국 개인의 삶과 가정 혹은 지역공동체를 통해 자유로운 소통체계를 만들어감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부드러운 힘을 창출하고 선도적으로 효율화를 이루는 부드러운 문화를 가꾸는 것이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가 우리의 전통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런 부드러운 힘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널려있다. 그것을 공유하는 우리의 다양한 시도를 세상과 역사는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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