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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직관

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철학에는 현상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후설이라는 현대독일 철학자가 제창한 현상학은 ‘현상을 통해 그 사물의 본질에 이를 수 있다.’라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를 본질직관이라고 한다. 간단히, 사물의 한 면만 보면 그 참모습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물의 단면을 보고도 그것의 핵심을 알아챌 수 있는 이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본질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과정을 통해 무르익은 훈련을 습득할 때 본질을 꿰뚫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힘들고 까다로운 정비훈련을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일류 정비사는 엔진의 시동을 걸고 공회전 소리를 듣는 순간 그 차의 문제점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본질직관은 특정 영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대학에서 훌륭한 인재를 선발코자 논술시험을 시행하였다. 주무자인 동료 철학 교수들로부터 일치된 견해를 들었다. 한 문단만 보면 수험생이 어떤 사람인지 알겠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해가 거듭되자 논술시험 채점이 짜증이 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소위 일류대학에 오는 학생들이 시중 학원에서 천편일률적인 논지를 훈련해서 복사하듯이 써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교장들은 정답을 달라고 요구했고,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사설학원들은 이 요구에 짜깁기한 모범 논술 작문유형을 제공하면서 빚어진 일이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제는 수능 고사로만 학생들의 입시점수를 내고 있다. 그러나 대학교수들이 요구한 것은 학생 각자의 고유한 논술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었고, 그것이 학생들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기준이었는데, 이를 포기한 입시제도는 퇴행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과거제도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혹은 영미 대학의 논술시험은 학생들의 ‘싹수'를 직관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이다.

요리전문가인 주방장들이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엄선하는 것은 중요한 음식 장만의 과정이다. 세계적인 셰프들이 재료의 생산지로 직접 가서 식품의 원재료를 씻지도 않고 덥석 베어 무는 장면은 자주 볼 수 있는 직관 추구 행동이다. 그들은 최고의 맛을 생성하기 위해 때로는 남이 생각지도 못한 원재료를 찾아 산천을 헤맨다. 얼마 전에 별세한 한 ‘방랑식객’은 폐쇄된 웅덩이에서 민물 매생이를 건지는가 하면, 도토리 낙엽에 묻힌 야생초 풀뿌리를 캐서 씹어먹으면서 최고의 맛이라고 격찬하는 직관적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본질직관은 천재를 발굴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작년이래 전 국민을 열광으로 몰아넣고 있는 트로트 왕 선발전은 그들이 하는 한 소절의 노래로 그들의 ‘싹수를 알아보는’(본질을 직관하는) 능력을 대부분의 한국인이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래를 좋아하고 취미라면 으레 노래를 부르는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기왕에 장착된 직관력이다. 영국 사람들은 몇 사람만 모여도 즉흥극을 꾸며낸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부터 이야기로 삶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직관력을 발전시키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비평을 수용하는 열린 태도를 통해 시행착오를 발전시켜갈 때 멋진 능력으로 장착된다. 대기업마다 저학력 기술자 중에서 이런 능력을 갖춘 기능인을 ‘기능장’(업체마다 명칭은 다르다)으로 인정하고 귀하게 대접하는 점은 좋은 예가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대한 관심을 두는 또 하나의 분야가 정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정치의 맥락을 파악하고 제대로 된 일꾼을 육성하는 데는 젬병이다. 그 이유는 합리적인 훈련을 통해 정치적 감식안을 키우고, 토론을 통해 비판적으로 시행착오를 성숙시켜가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른 정치와 이념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합리적 설계가 없이는 우리의 정치가 발전할 수 없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이 체계적으로 도모될 수가 없다. 훈련되지 않는 비합리적 직관은 본질을 놓치고 액세서리만 잡고 자기 욕구를 표출하는 감정적 포효를 생산할 뿐이다. 이제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올바른 정치적 본질을 파악하는 합리적 직관을 건강하게 키워보자.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공통된 직관을 갖고 재미있는 정치를 발전시켜 민주주의를 성숙시켜가고 있을 것이다.

신상형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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