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광성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과학은 논리적 창의성을, 예술은 미적 창의성을 창조합니다. 철학은 가로로 펼쳐지는 공간에 대한 현상을, 역사는 세로로 나열되는 시간에 대한 현상을, 문학은 가로와 세로를 아우르는 공간과 시간을 통합하는 인문 과학입니다.

여기 자기개발이라는 이름의 ‘도그마(Dogma)’가 있습니다. 모두가 옳다고 말할 때 자신만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로군.’이라고 말하겠지요. 용기 있는 사람 혹은 조직의 질서를 유린(蹂躪)하는 배반자라고 말입니다.

매슬로의 5대 욕구 중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 단계를 지난 사람은 최종의 단계 즉,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로 나아가기를 원할 겁니다. 우리 사회는 항상 상승형(上昇形)의 인간들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2대 8의 법칙이나 상위 5%가 지배하는 사회, 소수의 정치경제 엘리트가 대다수의 피지배 계급을 끌고 가거나, 능력을 발휘하여 먹여 살리거나, 아니면 갑과 을의 관계가 말해주듯이 피지배 계급의 피를 빨아가는 사회라는 말이죠.

매슬로가 말한 자아실현의 욕구는 물론 긍정적인 말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거기까지 이르는 사람은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므로 위험하기도 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노력은 정당하고 가상한 이상이며 인간 사회의 당연한 법칙이고 긍정적 요소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가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루지 못하는 대다수의 희생 아래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요소도 내포하는 것입니다.

세상 어떤 일이든 그 속에는 포지티브(Positive)와 네거티브(Negative)가 동시 공존합니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도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극력한 반대파와, 조심스럽지만 찬성파의 입장으로 나뉘듯이 말입니다. 다양성이 현존하는 사회를 이상적인 모델로 꼽지만 현실은 언제나 극단의 대립으로 점철 되어온 부조리한 사회, 그러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동력원을 신기하게도 창출해 온 사회, 그것이 대한민국입니다.

그 안에 자본의 문제가 있습니다. 최저임금제의 노사대립, 정치인들의 표, 대다수의 국민 마음속에 있는 ‘돈’의 문제. 지역마다 그득한 ‘님비('Not In My Back Yard(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도, 고급아파트 단지와 임대아파트 단지의 알력도, 강남과 강북의 집값 차이도, 저질사용자와 강성노조의 문제도, 권력을 쟁취하여 야당이 여당 되려는 노력도, 자식들 좋은 대학 보내려는 극성 주부들의 마음도, 결국 배경에는 ‘자본의 논리’가 있는 것이지요.

경제는 민주자본사회의 도그마입니다. 제아무리 다른 모든 정책을 잘하고 국민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아도 경제가 낙제점이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죠. 맛난 밥집을 하던 벗이 코로나로 인건비 줄인다고 두 명 몫을 혼자서 하더니 기어이 탈이 난 모양입니다. 별정직으로 근무하던 후배는 정권에 바뀌어서 잘리게 됐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리고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대한민국의 극단적인 자본 병폐를 논하지요. 그러나 시베리아 동토에서도 봄에는 파종을 하고 억새풀의 땅에서도 오곡은 실하게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화수분에서 쏟아져 나오는 금덩어리로 대표되는 경제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집단 이기와 사회적 병리를 낳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경계하고 항상 단속하며 살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삶에서는 그 자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 논리에는 과학철학도, 인문학과 역사와 문학도, 매슬로의 자아실현의 욕구도 한숨을 쉴 수밖에는 없습니다. 인정하고 가야 하는 절대적인 현실, 살아야 한다는 당위 앞에는 철학이나 인문학 따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잘나가는 정부도 이 문제의 부메랑은 피할 수 없는 법이지요.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아니꼬우면 출세해요.’라지만 그 말은 가장 합리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잘나가는 사람(상승의 완성)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는 없지요. 물론 소위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고 그 덕으로 상승한 지위거나, 능력 외적인 이유로 출세 가도를 달리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독한 노력을 통해 그 위치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경제에서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미덕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무신론자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죄를 고백한 것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그녀의 휴머니즘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중한 인격을 배양한 인간적인 삶의 방식이야말로 코로나 백신을 능가할 가장 현실적인 ‘경제 도그마’의 확실한 백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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