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번째, <꿋꿋한 주석병정>

박수영 책찌짝찌 독서모임 회원

오래된 주석 숟가락을 녹여 만든 스물 다섯 개의 주석 병정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주석이 모자라 다리 한쪽이 없이 한 발로 서 있는 병정입니다. 사람들이 잠든 밤, 장난감들은 멋진 무도회도 열고 악단 놀이도 합니다. 외다리 주석 병정은 맞은편에 있는 무용수 아가씨를 바라봅니다. 아가씨는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있고 드레스에 감춰진 다리는 주석 병정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석 병정은 무용수 아가씨도 외다리라 생각했지요. ‘친구라도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쳐다만 봅니다. 외다리 주석 병정은 안타깝게도 다른 장난감과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합니다.

 

청소년 문학을 읽다 보면 몇몇 작품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친구는 친구나 주인공에 의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세상에 혼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만 같았던 아이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보고 위로받고 함께 성장해 나갑니다.

 

학생이었을 때는 같은 학생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직장을 다니면 직장인들이 눈에 들어오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낳은 엄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학생이 직장인들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이가 어른들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같은 경험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엄마들에게서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아이 하나둘 키우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셋을 키우냐고요.

 

나의 경험에 비추어 타인의 삶을 헤아려 보려는 일이 어쩌면 공감이라는 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봅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는 마법 같은 말은 아무리 큰 잘못이나 실수도 나 혼자 겪는 일이 아님을, 누구나 그런 상황이면 그럴 수도 있다는 큰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위로는 용기를 줍니다. 힘들지만 꿋꿋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용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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