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춘

김포시청 경제문화국장

9월 첫날입니다.

고작 하룻 새에 기온이 내려갔습니다.

꼭 밉게 내리는 비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9월은 가을입니다.

밤 기온이 이슬점 밑으로 떨어져 풀잎마다 맑게 맺힌다는 백로가 7일에 있고, 23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추분이어서 이날이 지나야 비로소 밤 길이가 길어져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으로 본다지요. 21일이 음력 8월 15일로 추석 한가위인데 올 연휴는 앞에 주말이 붙어서 5일간입니다. 직장인들은 수지를 맞은 게지요.

추석이면 잘 익은 오곡백과로 정성껏 풍성한 상차림을 준비해 조상께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가서는 여름비에 무너진 산소도 손질하고 벌초도 하게 됩니다. 또한 성주와 터주, 조상단지 같은 집안 신들에게 햅쌀로 빚은 술과 송편이나 무, 호박을 넣은 시루떡을 만들어 뽀얀 백설기 위에 정한수를 함께 올리고 1년 풍년 농사와 가족이 무탈한 데 대해 감사를 올립니다.

우리 또래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내던 70년대만 해도 설날에는 집집마다 복조리를 돌리고 추석에는 마을마다 ‘콩쿨대회’를 연례행사처럼 열었습니다. 추석 한 달 전부터 동네 형들이 중심이 되어 펑퍼짐한 공터에 얼기설기 시둥을 세워 널빤지를 깔고 천막을 둘러 씌운 후 하얀 광목 천에 색깔 물감으로 커다랗게 현수막을 써서 내걸면 그럴듯한 가설무대가 뚝딱 만들어졌고,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제법 머리가 굵은 또래의 아이들은 어설픈 그림과 글씨로 급하게 만든 ‘콩쿨대회’ 포스터를 들고 이웃 동네 담벼락과 전봇대에 풀칠을 하러 하루종일 쏘다녔습니다.

마침내 추석 전날, 초저녁부터 허벅지가 꽉 끼는 나팔바지에 윗 단추를 두어 개 쯤 풀어헤친 원색 셔츠로 멋을 낸 형들이 울려대는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면 일찌감치 저녁상을 물린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 들고 마침내 몇 개의 커다란 백열등이 환하게 켜지고 무대와 공터를 비춥니다. 마을회관에서 가져 온 철제 책상과 접의자로 꾸민 심사위원 에는 소싯적에 서당을 다니셨다는 노인회장께서 오랜만에 줄무늬 체크 양복과 맥고모자로 단장하고 앉아계시고, 그 옆으로 새로 산 하얀 운동화에 초록색 새마을 모자를 단정하게 눌러 쓰신 이장님과 그 많은 논밭 농사를 억척스레 지으면서도 태평양 같은 오지랖을 자랑하시는 부녀회장이 그저께 마송 대목 장날 미장원에서 새로 한 파마머리를 매만지면서 점잖을 빼고 앉아계십니다. 평소 코미디언보다 더 배꼽잡게 웃기는 넉살 좋은 아랫말 친구 막내 삼촌의 사회로 노래자랑의 막이 오르면 쭈뼛쭈뼛하고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얌전한 줄만 알았던 갈래머리 여고생 옆집 누나가 이은하의 '밤차'를 부르면서 연신 엉덩이와 손으로 여기저기 찔러대며 디스코 삼매경에 빠지고, 평소 엄하기만 하신 이장님도 의레적인 손사래를 몇 번 치시다가 찬조 출연으로 올라가셔서는 철지난 뽕짝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뽑아대십니다. 이렇게 저렇게 아는 처지로 방문을 했던 인근 동네 주민들도 자신 있게 또는 계면쩍게 올라가서는 한자락씩 뽑고 상기된 얼굴로 내려오십니다. 한바탕 흥겨운 노래마당이 마무리되고 청년회장이 무대 주변에 걸어 두었던 새끼줄에서 누런 종이를 뽑아들고 누구는 천 원, 누구는 이천 원 하면서 행사 협찬 내역을 보고하시고, 심사위원장이신 노인회장께서 한가위 덕담을 늘어 놓으시고는 등수 발표와 함께 상을 내리십니다. 상이라야 1등이 전기밥솥, 2등 라디오, 3등 전기다리미, 기타 등외로 양은 솥, 주전자, 냄비가 주어지고 모두에게 수건 한 장씩이라도 돌아가면 1등을 해서 전기밥솥을 차지하신 간데말 아줌마가 앵콜 곡을 부르고 모두가 생음에 맞춰 고고, 디스코, 관광버스 막춤 할 것 없이 각자의 몸 사위로 한바탕 춤판을 벌이는 것으로 근 한 달여 동안 온 마을을 달큰한 열정과 흥분으로 벌컥 뒤집었던 추석 한가위 마을 축제는 끝이 납니다.

올 추석에는 가족과 친지,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일이 가능할까요?

코로나 시절이라 그런지 그때가 더욱 그립습니다.

여러분의 추석, 가을은 안녕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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