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7080 가요 중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했었네. 그러다가 당신이 받으면 끊었네. 웬일인지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그 당시에는 공중전화가 대세였다. 전화를 걸면 거실 전화기로 다가와 온 식구가 보는 앞에서 전화 받는 애인의 장면을 떠올리며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형적인 과거 판 전화기 공포증 Telephone phobia이다. 만나 시간을 보내면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뤄질 텐데 물꼬를 트는 한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그러나 전화기 보급이 폭발적으로 많아져 개인 손전화 시대가 되자 통화 공포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많은 손전화도 동시 다자의 통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통신사나 통신 앱 개발자들은 문자메시지를 서비스 기능으로 추가했다. 그러나 문자란 음성통화와는 달리 문법을 따라 냉정한 규칙으로 핵심 내용을 감정 없이 전달하는 특성을 갖는다. 문자는 내용의 전달도 정확하거니와 소리를 통한 오해도 줄인다. 이런 이점 때문에 젊은이들의 엄지손가락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문자 보내기는 급기야 부담스러운 음성통화의 자리를 밀어제쳤다.

이제 음성통화는 실수를 받아주는 직계가족이나 애인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수단일 뿐이다. 손전화가 잦은 어른들도 이를 쫓아갔다. 게다가 시간 제약에서 해방됨은 금상첨화였다. 그러는 사이에 통화는 부담을 넘어 공포의 수단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호될수록 그 도는 더해간다.

통화 울렁증은 통화하기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는 증세로 치유가 필요한 일종의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타인이나 대중과 소통하기를 두려워하는 감정은 여러 가지로 뭉뚱그리면,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실수를 조롱하리라는 열패적 감정에서 비롯한다. 1993년 영국에서 나온 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민의 2,500만 명이 통화 공포증에 시달렸고, 2019년 보고에서는, 베이비붐 세대 중 40%, 밀레니엄 출생자 중 70%가 통화음이 울릴 때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손전화가 활발한 현재 한국은 정도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통화의 공포는 하기 싫은 대화를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빚는 전화번호가 뜰 때 발생한다. 큰 빚을 진 선배 한 분은 은행 전화와 빚쟁이의 전화를 받으면 일주일씩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강요나 협박 혹은 조롱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통화의 두려움은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배석한 주변 사람들 앞에서 적절하게 받기가 마뜩잖아 정신적 파탄이 되는 상태이다.

두려움은 대화 중 전혀 이해할 수 있는 관심사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는 이유도 있다. 대면 시에는 자제와 설득을 할 수 있는 몸을 쓸 수 있지만, 폭언과 협박의 통화에서는 감정 통제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생산적인 대화도 잇기 힘들다. 이런 경험은 결과적으로 모든 통화를 불신하는 계기가 된다.

통화 울렁증을 해소하는 비결은 대화를 미리 계획하여 할 말을 준비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과도한 기대와 우려는 뒤로하고 계획을 찬찬히 세우는 사이에 여유롭고 안정된 마음 상태를 갖추게 된다. 많은 전자기기의 사용은 소통의 대안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나, 반면에 사람 사이의 통화에는 이질감을 초래했다. 특히 밀레니엄 세대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보고가 많다. 이것을 극복하자면 통화 소통의 고통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 오해를 푸는 일부터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통화 공포증은 동시에 신중한 치유법이 동원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예컨대 인지행동치료, 심리치료, 행동치료 및 노출 치료가 그 해법이다. 탁상공론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전화기 사용을 자제하고 여유롭게 사용하며, 단순한 통화로 시작해서 점차 자기 방식을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동전화로 시작해서, 친구와 가족과 직접 통화하며, 그 이상으로 통화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직접 통화를 위주로 생활하는 노년층에서는 인지하지 못할 수 있으나, 통화 공포는 현재 우려할 수준으로 만연해 나가고 있음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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