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孤單)

윤병무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고단했던가 봅니다
곧바로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훗날에는 함부로 사는 제가 아내보다 먼저
세상의 손 놓겠지만
힘 풀리는 손 느끼고 나니 그야말로
별세(別世)라는 게 이렇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날 오면 아내의 손 받치고 있던
그날 밤의 저처럼 아내도 잠시 제 손 받치고 있다가
제 체온에 겨울 오기 전에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아내 따라 잠든
제 코 고는 소리 서로 못 듣듯
세상에 남은 식구들이
조금만 고단하면 좋겠습니다

 


시 감상

때로는 아주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대를 더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내라는 이름은 좀 더 거룩하고 좀 더 아름다운 이름이어야 하는데 가끔은 그 반대편에 서 있을 때, 아내의 그림자를 본 적이 있는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헤아리는 것이다. 고단의 개수가 아닌 고단의 이유를 헤아리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이 힘들다. 대부분은 아내와 같이 둘만 운영하는 작은 가게들. 어쩌면 아내는 내 고단을 절반 이상 짊어지고 사는지도 모른다. 누가 절반이든 더 많든 고단의 무게는 같다. 조금만 고단하면 좋겠다. 절기에 따라 가을이 온 것처럼, 고단 뒤에 행복이 불쑥 찾아오면 좋겠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서울 출생, 동서문학 등단, 시집 <고단>, <5분의 추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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