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흔히 읽기를 말하기, 듣기와 더불어 기본적인 지각을 넓히는 단순한 인지 동작으로 여긴다. 그러나 역사 읽기나 문화 읽기와 같은 표현에서 보듯이 읽기의 정도는 단순한 지각 동작을 넘어서는 탐색 활동이다. ‘무엇을 읽고 계세요?’라는 질문은 요사이 ‘무엇을 보고 계세요?’라는 질문과는 다르게 이해된다. 후자는 무슨 책을 읽느냐는 뜻이라면, 전자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탐구하느냐의 뉘앙스를 풍긴다. 아니면 반대인가? 하여간 달리 이해된다.

영국대학의 교수직은 통상 네 단계로 분류된다. Lecturer, Senior Lecturer, Reader, Professor. 굳이 한국식으로 하자면,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교수에 해당한다. 왜 부교수에 해당하는 직급의 교수를 ‘읽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는지 의아스럽지만, 독자적인 연구를 한 자기의 저서를 읽는 수준의 지식인이라는 뜻으로 그랬으리라는 견해가 그럴 듯해 보인다. 또, 대학생에게 던지는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읽습니까?’ What are you reading for? 라는 영국식 영어의 질문은 ‘당신의 전공은 무엇입니까?’라는 뜻인데, 미국식 표현으로 바꾸면 What is your major? 가 된다. 여기에서 읽기는 공부나 탐색을 함의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눈으로 스쳐보는 것을 읽기라고 생각하는 상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눈으로 보는 것도 단순한 행동이 아니다. 스쳐보기, 훑어보기, 띄어보기, 찍어보기, 짚어보기, 쪼개보기 등. 보는 전체를 읽는 것이라면, 읽는데도 따라서 다양한 차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차원을 아우르는 읽기를 다르게 표현하면 요즘 식으로 ‘공부’ 정도가 될 것 같다. 흔히 마음 읽기를 마음공부라고 부르듯이.

그냥 스쳐보는 정도의 읽기가 소비적 감상을 뜻한다면 공부란 읽기를 통해 자기의 지식을 쌓는 전문적 체계화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읽기란 알게 모르게 특정한 목적과 과정 그리고 방법을 갖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사람은 자기의 삶을 위해 이런 체계를 갖고 있다. 동식물은 이런 체계를 갖추지 못하지만, 인간은 의식의 체계로서 이런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철학적 인간학이라는 전문분야의 설명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목적, 과정, 방법을 갖기 위해 각자는 논리적 틀을 갖추어야 한다. 말하자면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억측을 강요하는 무리를 저지른다. 여기에서 읽기란 어떤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오감으로 접촉되는 대상물을 수용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야기의 모호함을 벗어나기 위해 책 읽기로 논의를 축소해보자.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읽는 사람의 목적과 과정 그리고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컨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소설책을 읽는다고 하자. 꼼꼼한 연구가 아니기에 대충 이야기 중심으로 건너뛰며 읽는 방법을 선택하고, 읽은 바를 가족에게 자기식으로 엮어 이야기한다. 반대로, 또 한 사람은 건축가의 저서를 읽고 자기의 문학비평의 틀을 세울 수도 있다. 이럴 때 두 읽기는 서로 궤도를 달리한다. 어쩌면 이것으로 읽기의 효과는 끝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영향을 생각하면 그 효과는 상당히 다른 차원으로 전개된다. 극단적인 예로 인간 문제의 해결은 전쟁이라는 단순 견해를 가진 아빠의 스테레오 타입의 이야기를 지겹게 들은 자녀들의 정서는 어떻게 될까? 기우이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적 단면이 이런 것은 아닐까? 서로 존중하면서 자신의 읽기 소감을 편안하게 말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는 없을까?

긴장을 늦추고 자기의 읽는 방식과 목적과 과정을 자연스럽게 펼쳐 놓는 사회가 우리에게는 서로를 통해 다양한 도움을 나누는 터전이 된다. 많은 읽기가 있고, 그 읽기들 각각이 많은 차원을 가짐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인정해야 할 필수 조건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읽기를 시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와 함께 말하기와 글쓰기도 다양한 실험을 펼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서로의 자극으로 다양한 창의적 전공을 펼칠 수 있고, 비로소 우리 사회는 창의적인 발전을 맞을 것이다. 읽기의 의미를 진중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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