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가현초 영양선생님

“영양 선생님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 학생 있나요?”

“음료수 뚜껑 따주는 일이요!”, “자리를 안내해 줘요!”, “골고루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선생님이에요!”

이번 3학년 수업을 들어갔을 때 학생들이 대답한 내용입니다. 저는 영양 수업을 들어가면 항상 이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합니다.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고, 학생들 중에 저의 하루 일과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언제 식사를 하냐며 영양교사의 브이로그를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6학년 학생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이 글에 저의 하루 일과를 담아보고자 합니다.

저는 7시 40분, 식재료 검수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희 학교는 50학급의 큰 규모의 학교이다 보니 축산물과 공산품의 경우 입찰 방식으로 업체가 선정됩니다. 따라서 같은 물건이라도 저렴한 가격의 물건으로 바꾸지는 않았는지, 유통기한은 충분히 남았는지, 농산물은 신선한지, 축산물은 선홍빛이 돌고 있는지 매의 눈으로 검수를 합니다. 교환이 필요한 식재료는 ‘나에게 1600명의 입이 달려있다’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업체와 이야기하여 좋은 품질의 식재료로 교환합니다.

검수가 끝나면 신규 조리실무사님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합니다. 저희 학교의 경우, 지난 2년간 5명의 신규 조리실무사님들로 바뀌어 이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함께 레시피를 살펴보기도 하고, 실수하기 쉬운 작업들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후에는 전체 조리실무사님들과 오늘의 작업에 대해 아침조회를 합니다. 조회를 하면서 아픈 사람은 없는지도 함께 확인합니다. 조회 시에는 식품알레르기가 있는 학생들의 경우 소량의 대체식(제거식)을 준비하도록 안내, 작업 시 주의할 사항, 위생적으로 지켜야 할 부분들을 교육합니다.

“계란 알레르기 학생이 있으니 황태 콩나물국 소량은 계란을 넣지 말고 조리해 주세요.”, “가지 튀김을 할 때에 빵가루를 묻혀서 하면 더 바삭하다고 하는데 오늘은 새로운 조리법으로 해보도록 할게요.”, “여름철이니 과일 소독 농도, 시간 확인 한 번 더 체크해 주세요.”

조회가 끝나면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들을 정리합니다. 급식물품 검수서를 정리하며 오늘 사용되는 제품의 유통기한 및 식품 라벨에 대해 한 번 더 살펴봅니다. 수산물 원산지증명서, 축산물 등급판정서를 등록, 각종 서류를 정리 및 보관합니다. 어느 정도 서류가 정리되면 담임교사에게 식품알레르기 안내를 하여 오늘의 급식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합니다. 서류상 오늘 챙겨야 할 사항들을 챙기고 나면 다음 날 조리법을 살펴봅니다. 발주에 있어 누락된 것은 없는지, 어떤 식재료를 추가하면 학생들이 더 맛있게 잘 먹을지를 연구하며 최종적으로 내일의 급식을 준비합니다. 그렇지만 사무실에 앉아 서류작업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틈틈이 조리실에 나가서 위생적으로 어긋난 것은 없는지 확인하며 조리실무사님들이 다치지 않고 조리작업을 할 수 있도록 확인 및 안내합니다. 신메뉴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경우에는 서류작업을 오후로 미루고 조리실에서 조리실무사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며 맛있는 급식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합니다.

점심시간,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겉보기에는 물 위에 떠있는 백조의 모습이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물속의 발은 끊임없이 갈퀴질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매일의 평범한 한 끼가 나오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이 전쟁입니다. 교환한 물품이 점심시간 20분 전에 겨우 도착하여 조리를 점심시간 시작 전까지 끝마칠 수 있을지 발을 동동 굴렀을 때에도, 조리실무사님 중 한 분이 크게 화상을 입어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더라도 학생들에게는 항상 웃으면서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점심시간이 학생들에게 기분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학생들이 점심을 먹으러 올 때면 환하게 반겨준다는 인상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점심시간에는 담임선생님과 함께 식품알레르기 학생을 챙기기도 하며, 배식 양은 적절한지 확인,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하여 2차 배식 전 방역은 꼼꼼히 되었는지, 그 외에도 돌발 상황은 없는지 등을 총괄합니다.

오후에는 오늘 있었던 급식에 대하여 급식 일지를 작성합니다. 음식물 쓰레기양을 확인하며 어떤 이유로 잔반량이 많이 나왔는지 고민해 보며 오늘 급식의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스스로 반성합니다. 반성한 내용을 토대로 다음 달 식단을 구성하며 똑같은 메뉴라도 발전할 수 있도록 레시피를 수정합니다. 또한, 금액을 확인하며 예산을 잘 쓰고 있는지 확인, 공문 처리, 고장 난 조리기구 수리, 레시피 및 영양 수업을 연구, 교육자료 제작을 합니다. 학교 급식은 HACCP 시스템을 도입하여 작성해야 하는 ccp 서류들이 있는데 조리실무사님들이 서류들을 잘 작성하였는지 확인하며 미흡한 경우 재교육을 실시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할 수 있는 직업.” 영양교사라는 길에 들어선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제가 일기장에 적었던 내용입니다. 이 직업은 성격이 외향적이어서 아이들이랑 쉽게 친해지고 농담도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할 것만 같고, 어떤 일이든 금방금방 잊을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심판대이고, 유독 하루하루를 엄격하게 평가받는 직업이다 보니 마음을 많이 다치며 폐쇄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눈으로 잘 보이는 직업이기도 하며, 다방면에서 보람이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학교에 한 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리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교내외에서 만나게 되는 인간관계에 치일 때면 ‘이 직업을 어떻게 평생 하지?’ 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저를 위로해 주며 붙잡아줍니다. 저의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그려서 편지를 건네주기도 하고, 맛있다고 더 먹으러 나오는 것을 제가 좋아하기에 일부러 2번, 3번 받으러 나오는 아이들을 볼 때면 속상한 마음이 사르르 녹고는 합니다. 작년에 졸업한 학생이 “선생님은 학교에 한 명밖에 없는 귀한 직업”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학생들의 잘 먹는 모습, 미소 짓게 만드는 아이들의 한 마디가 이 직업을 열심히 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에 스스로 폐쇄적으로 변하지 않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영양교사가 되려고 합니다.

대학 재학 시절, 아이들의 편식은 심리적인 이유로도 생긴다고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생선구이를 먹을 때에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 그 경험이 아이가 해당 음식을 싫어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바람은 저와 만나는 학생들이 학교급식에서 맛보게 되는 식재료들을 심리적인 이유로 싫어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급식실을 떠올리면 ‘나를 반겨주는 곳’으로 생각이 되어서 같은 음식이라도 더 맛있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허용적인 어른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학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때로는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늘 만드는 점 하나하나가 이어져서 선이 되기에 오늘 하루 저의 최선이 아이들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오늘 아침도 출근합니다!

정말 많이 지치던 날, 한 학생이 수줍게 건네준 정성이 담긴 편지. '이 일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스승의 날에 받은 편지. “얘들아 고마워!♡”
내성적인 학생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 운영해 본 ‘급식 소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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