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리동네⑧/<진보와 빈곤>, <토지와 경제정의>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토지와 경제정의>, 대천덕

 

갑오개혁이라는 게 1894년에 반포됐었다. 개혁 내용 중엔 신분제 철폐와 노비 해방이 담겼었다. 국가의 공식 발표로 노비가 해방되어야 했지만, 해방된들 노비들이 갈 곳이 없었다. 일할 곳도 없었다. 갈 곳 없고 일할 데 없는 노비들은 국가가 아무리 해방을 선포해도 해방될 수 없었다. 당시 농본사회였기 때문에 땅을 소유하지도 않고, 땅을 일굴 권리가 없다면 주인으로부터의 해방은 주인집에서의 방출이라는 의미로 오그라들었다.

토지가 없으면 해방이 되어도 자유가 없다. 해방은 관습과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자유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상이다. 해방이 되었어도 토지가 없어 선택과 결정의 자유가 없다면, 정치적으론 해방되었지만 경제적으론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 속의 노비는 사라졌지만, 문화와 현실 속의 노비는 주인의 그물을 벗어날 수 없었던 거다.

구약성경 ‘여호수아’는 땅 분배에 관한 책이다. 이집트를 탈출했던 히브리인들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땅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관한 책이 ‘여호수아’다. 그리고 ‘레위기’에선 부족별 가족별로 분배받은 땅을 처음처럼 유지해야 한다고 밝힌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임의대로 그 사유권을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근이나 상속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일시 변동이 있기도 하지만, 50년마다 처음 분배받은 모양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게 구약성경의 토지법이다. 이 토지법을 ‘희년’이라고 했다.

강이나 바다처럼, 땅은 사람이 만들어낸 게 아니기 때문에 사유할 수 없는 자연이다. 자연을 개발하고 일구어 풍족한 삶을 꾀할 수 있으나 특정인이 항구적으로 사유하는 건 이상하다. 대동강의 흐르는 강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은 재담 속 사기꾼이어야지, 대동강을 점유해 사유화하고 등기를 소유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영웅으로 존경받는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부득이 임야와 택지, 농지 등에 특정한 사람이나 기관의 이름으로 그 소유권이 인정되는 게 현실이지만, 근원적으로 토지는 공공의 것이다. 그래서 토지를 사유한 자에게만 세금을 내도록해, 토지가 없어도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생각이었다. 토지를 소유한 사람만 세금을 낸다면, 꼭 필요한 경우에만 토지를 사유하려 할 것이고, 토지를 생산수단 삼아 불로소득을 올릴 수 없을 것이다. 토지에만 세금을 매긴다면 토지 사유에 대한 매력은 없고, 토지 사용에 대한 욕구만 남을 것이라, 경제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어, 불황 없는 경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게 헨리 조지의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영구히 토지를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고 싶은 토지가 많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토지 단일세론(Single tax)은 구약성경의 희년 정신과 통한다. 대천덕 신부(Reuben Archer Torrey Ⅲ,1918년-2002)는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희년 정신이 헨리 조지의 토지 단일세 실천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갑오개혁이 반포되고 신분제가 없어진 지 150년, 대한민국에선 누구도 노비라 불리진 않는다. 그러나 토지가 없고, 집이 없고, 대출받아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자유롭지 않다. 해방되었으나 자유는 없는 것이다. 법적 선언과 정치적 수사와 추상적 구호만으로는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부동산이 없고, 빚을 더미로 쌓아놓은 까닭에 자유롭지 않다면, 헨리 조지의 단일세론과 대천덕 신부의 희년 사상을 들어볼 일이다. 자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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