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시간을 파는 상점>

서성자 책찌짝찌 독서모임 회원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이렇게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상점을 운영 중인 여고생 온조는 소방관이었던 아버지의 부재로 엄마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고자 시작했던 일이지만 기특하게도 단지 돈만 바란 것은 아니다. 어느 미치광이 운전자 때문에 원했던 삶을 펼치기 전에 먼저 가신 아빠에게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의뢰한 일들은 저마다 간절한 사연으로 꼭 해야 하지만 본인이 할 수 없는 일들이기에 온조의 시간을 사게 된다.

첫 번째 의뢰인은 친구를 잃을까 걱정되어 다른 누군가가 훔친 PMP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시간과 고민을 쏟는 사람이며, 또 다른 의뢰인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는 손자이다. 마지막 의뢰인은 천국으로 가기 전 아이들에게 편지 배달을 부탁하며 시간을 붙잡고 싶은 선생님으로, 온조의 상점은 다양한 세상 이야기를 전해준다.

PMP는 다행히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 아무 일 없이 끝난다. 불편했던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건 예전에 비슷한 사건으로 훔친 아이가 자살했기에 그것을 막고 싶었기 때문이었겠다. 최고만 강요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뭔가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자기편이 없다는 외로움에 모범생이던 아이는 아마도 PMP를 훔치는 잘못된 방향으로 자신을 알리고 싶었나 보다.

문득 책상 위에 놓인 작고 소박한 화초에 눈길이 갔다.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다, 예쁘다 칭찬해주고 물과 햇빛 바람을 때때로 제공하며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키우는 화초처럼 아이들을 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소설은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편한 일들, 그저 신경 쓰지 않으면 엉뚱하게도 비참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일들을 작가는 정성스럽게 풀어간다. 바로 타인을 위해 쓰는 시간을 이용해서 말이다.

오히려 본인 돈을 써가며 천국으로 간 선생님을 대신해 아이들에게 편지를 배달하는 일 자체를 고귀한 것으로 생각하는 온조는 인간의 내적인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을 공부해가고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살아가지는 않는지 그래서 타인을 위해 쓰는 시간이 없어진다면 세상은 벼랑 끝에 매달린 들꽃처럼 아찔하기만 할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 받는 월급처럼 통장에 보상이 쌓인다면 신이 나서 하겠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살림과 육아에 쓰는 시간은 어쩌면 나에게는 ‘최고의 고귀함’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 속에서 온조가 바랐던 것처럼 세상의 균형을 맞추고 싶다. 지금 우리는 내 곁의 소중한 사람에게 시간을 나눠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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