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정 호

그 시절 그 동네 16평 아파트에 사는 새댁들은 허물이 없었다
설거지 끝내고 세탁기 한 판 돌려댄 후에
같은 동 또 옆 동 수다들 한 방 가득 펼쳐대는 한낮
코흘리개들보다도 더욱 신들이 났다
어느 집인들 좁은 방 두 칸에 가진 거라곤
밤마다 푸근한 사랑 익혀내는 싱싱한 남편과
재롱둥이 한둘씩뿐, 기실 더는 보여줄 것도 없지만
안 봐도 서로가 훤히 들여다뵈던
말 그대로 소꿉장난 시절이었다

유치원 보내면서
이제는 24평, 그래도 애들 데리고 이 집 저 집
볼 것 보여줄 것 더러는 있었는데
애들 머리 커지고 목소리 점점 굵어지고
각자 공부방 찾아 33평으로 옮겼다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만 얼굴 부딪는 이웃들
그냥 눈웃음이나 목례 한 번뿐
다들 비슷한 중년의 아낙들끼리지만
꼭꼭, 숨길 게 너무나 많아 더욱 서먹해지는
저 짙은 화장 속 두터워진 얼굴들에 등 돌리고

엘리베이터 거울에 나를 비춘다
나는 누구인가, 내 속에 감춰진 나를
꼭꼭 숨기고 있는

시 감상
어쩌면 16평 아파트에 살았을 때가 가장 사람답게 살던 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16평, 20평 등의 평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이 적을 때 나눠줄 것이 더 많은 것이 인생 아닌가 싶다. 숨길 것이 없을 때 가장 행복한 것과 같은 말이다.
우리는 매일 꼭꼭 숨는 연습을 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지금. 무엇을 숨기려 하는지 내게 물어보자. 숨길 것이 정말 있는지?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정호 : 울산 출생, 문학 선 등단, 시집 <비닐 꽃>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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